초봄 창틀에 새 모이통을 달아두었다.
얼마 후 참새 몇 마리가 들락거리며 모이를 쪼았다.
작은 주둥이로 그보다 더 작은 모이를 쪼아 껍질은 휙~ 날리고 알맹이만 쏙 빼먹었다.
모이를 놓아두지 않은 아침에는 시끄럽게 울어대며 시위를 했다.
참새 두 마리가 서로 먼저 먹겠다고 날개를 투덕거렸다.
내가 돈 열심히 벌어서 모이 더 사 주마했다.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자 참새들은 오지 않았다.
나도 아침저녁 일다니느라 잊고 살았다.
겨울이 왔다.
냉랭한 모이통에 모이를 조금 부어놓았다.
내가 외출한 사이 다녀간 듯 모이가 줄어있다.
오늘은 새를 볼 수 있을까?
새의 따가운 지저귐을 들을 수 있을까?
모이통에 모이를 부어두고 창문을 열어두었다.
12월 말의 아침 공기는 찬데 햇살은 눈이 부시다.
새들이 모두 늦잠을 자는지 오지 않는다.
멀리서 내가 방충망을 열었다 닫는 소리를 들었을 만도 한데.
오라는 참새들은 오지 않고 보일러가 신나게 돌아가는 소리만 들린다.
책장을 넘기는 손이 시려온다.
모이값은 더 벌 수 있는데 보일러가 돌아가며 올라가는 도시가스비는 나를 손 떨리게 한다.
슬며시 창문을 닫았다.
거실 온도가 1도 떨어졌다.
다시 19도로 올라갈 때까지 보일러는 계속 달릴 것이다.
나는 겨울의 냉한 공기를 좋아한다.
대신 몸은 뜨끈해지는게 좋아 전기방석 위에 앉아 책을 읽는다.
거실 창으로 들어왔던 찬 공기 때문에 시렸던 발을 의자로 옮겨 양반다리를 했다.
그때 스치듯 책상 위로 그림자 하나가 날아갔다.
나는 지나가던 어떤 새의 날갯짓이라고 확신했다.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고개를 돌려 거실 창의 햇빛을 뚫고 새 모이통을 바라본다.
드디어 보일러 소리가 멈췄다.
나는 다시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먼저 죽은 자들과 다시 태어나고 싶다.
그리고 그들보다 먼저 죽은 후 그들에게 슬펐던 마음을 되갚아 주고 싶다. (중략)
그래도 무엇을 좀 먹어야지 하며 입안으로 욱여넣는 따뜻한 밥, 그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을 그들에게 먹여주고 싶다]
나는 팔짱을 풀고 글에 밑줄을 그었다.
문득 뜨거운 밥 한 공기 떠주고 싶은 누군가를 떠올렸다.
아침독서 : 박준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_<아침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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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아침에 인스타에 올린 후 뉴스를 보게 됐다.
비행기 사고가 났다고. 기분이 묘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내가 다음 날 쓴 글은 이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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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생각한다.
기적이라는게 존재한다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묻고 싶다.
신은 어떤 이유로
누군가의 생과 죽음을 주관하시나요.
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대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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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라면 이 글은 12/29일 화요일에 연재되어야 했지만
오늘 아침에서야 화요일 연재를 하지 않았다는 걸 인지했다.
화요일 내가 뭘 했나 사진첩을 열어보니 오전에 지인을 만나잠깐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2024년의 마지막날이라 정신없이 오후 알바 연장근무를 한 날이다.
집에 돌아오니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마음이 어지러우니 요일도 잊었고 글을 올린다는 사실도 잊었다.
나는 조금씩 일상을 찾아가겠지만 그럴 수 없는 수많은 희생자와 남겨진 유가족과 부상자가 있다.
슬픔 가운데 모래알 씹듯 밥 한 숟갈 떠 넘기는 것도 고통스러울 그대들이여, 부디 그래도 삶을 부여잡고 살아주세요.
뜨끈한 밥 한 공기로라도 마음을 데우며 살아주세요.
남은 그들에게 천천히 일상이 다시 채워지길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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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2216편 사고로 인한 179명의 사망자와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