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끗해도 괜찮아

자기 시간 관리를 망쳤을 때

by 윤서린


나는 출발선에서부터 삐끗했다.

2025년 2월 20일 목요일 오전 <엄마의 유산 2> 프로젝트를 위한 글쓰기 소모임 회의가 있는 첫날.

지난주에 시간이 되는 날짜를 골라 신청한 것인데 하필 큰 딸의 대학 졸업식과 시간이 겹친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나는 화, 목 오전시간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시간이라 망설임 없이 목요반에 가겠다고 손을 들었다.

지난 3주 동안 토요일 새벽 5:40분에 잠을 쫓아가며 힘겹게 일어나서 6시 글쓰기 수업을 받았던 생각이 나서 토요일 새벽반, 오전반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솔직히 늦게까지 자고 싶었다.


그 결과 어떻게 됐을까?

목요일 소모임 회의가 끝나는 시간은 11:30인데 아이 졸업식은 11시였다.

큰 딸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본식은 참석하지 않고 12시까지만 학과별로 모이는 시간에 맞춰서 가면 된다고 나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여기서 아이에게 1차 미안함이 쌓인다)

12시까지 가려면 늦어도 11: 15분에는 출발해야 한다.


단톡방에 회의 후반에 차로 이동하며 참석해야 할 것 같다고 문자를 남겼다.

첫날인데 이런 상황을 만든 내가 바보 같고 지담 작가을 비롯 다른 작가들에게 미안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엄마의 유산>에 쓰일 편지형식의 글에 자녀들에게, 다음 세대에게 남기고 싶은 주제를 하나씩 발표했다.

그 주제를 단순히 엄마가 자녀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닌 계승해야 할 가치로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같이 고민해 보는 시간이었다.

다음 주까지 글을 써서 어떻게 공유하고 피드백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이와 약속한 11:15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기다리다 지친 시아버님의 전화가 울린다.


급한 마음으로 채팅창에 지금 이동해야 할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글을 쓰는데 회의 흐름을 깨는 것 같아 키보드를 누르는 손가락이 천근만근이다. 고민하는 사이 11:28분이 넘어간다. 회의 종료 시간이 2분 앞으로 다가왔다. 이야기는 더 길어질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11:30분에 책상에서 일어났다. 줌회의 화면이 켜진 휴대폰을 손에 들고 얼른 출발하자고 딸아이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 순간 음소거 버튼을 안 누른 상태였는지 내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회의의 진중한 분위기가 깨지며 민망해진 나는 더 정신이 없었다. 바보다 바보... 나는 나를 자책했다.


끝나지 않은 줌 회의를 차량 블루투스로 연결해 소리만 들으며 졸업식장으로 달려갔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막히지 않으면 25분 거리. 부디 12시까지 도착하길 바라면서 마음은 시속 100km로 페달을 밟았다. 12시까지만 도착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졸업식장에 가보니 이미 본식은 다 끝나고 강당은 비어있었다. 학교 이름이 써진 현수막 앞에서, 인생 네 컷 사진기 앞에서 졸업생들과 가족들이 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큰 아이는 급하게 졸업가운과 학사모를 빌리러 이동해야 했고 사람들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는 그 시간을 더 더디게 만들었다.


결국 딸아이는 학과별 사진을 찍는 시간에 참석하지 못했다. 교수님들과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딸아이를 끝까지 기다려준 학과의 몇몇 친구들과 아쉬운 데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아이는 "아~ 졸업식 꽃은 역시 짜장면이랑 탕수육이지~ " 하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내가 꿈을 향해 달려간다고 아이의 중요한 순간과 추억을 망치다니... 나는 이기적인 엄마가 된 것 같아 미안했다. 동시에 자기 시간 관리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어리바리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괴로웠다.


나는 왜 이리 바보 같을까, 왜 미리 스케줄을 확인하지 못했나.

목요일 소모임 회의에도 끝까지 집중하지 못해 민폐를 주고 딸아이의 졸업식도 엉망으로 만들고.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화가 났다.

저녁에 아르바이트에 가서도 온통 이 생각만 했다. 앞으로도 이런 변수가 생기기 말라는 법이 없다. 우리 식구는 시부모님 포함 8명, 병원을 모시고 가야 하거나 다른 돌발상황이 생기면 그때 나는 어쩌지?

왜 내가 목요일 오전 시간이 온전히 내 시간이라고 착각했지? 오늘이 가기 전에 이 상황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작가들께 양해를 구하고 토요일 새벽반으로 바꾸자는 마음이 드니 함께하기로 한 목요일 소모임에도 죄송한 마음이 들고 구성이 끝난 토요일반에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자기 시간관리 하나 제대로 못하는 못난 나를 들킨 것 같아서 속상하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지담 작가의 말처럼 문제에 빠져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문제를 해석하고 해결하는데 내 에너지를 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움도 내 몫이다.


지담 작가께 상황을 설명드리는 문자를 보내는 말미에 나는 이렇게 썼다.

"스타트부터 삐끗했다고 주저앉기 싫습니다. 용기 내서 함께하고 싶어요."


나는 이 <엄마의 유산> 프로젝트를 끝까지 해내고 싶다.


예전의 나라면 삐끗한 김에 주저앉아서 포기할 핑계를 이것저것 찾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변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자존심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과정이다"라는 달라이 라마(주1)의 말처럼 나는 잘못을 인정하고 성장하는 중이니까 나에게 조금 너그러워져도 되지않을까?


지담 작가와 다른 작가들에게 문자를 보내면서도, 이틀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 찔끔거리는 나 자신이 못나기도 아주 조금 대견하기도 하다.


여러분~~~ 제가 비록 출발선에서 삐끗했지만 툭툭 털고 일어나 달려갈 테니 목적지까지 같이 가요!



주1) 달라이 라마 :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이자 티베트 망명정부의 국가원수.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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