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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독 5일 차] 내면세계의 극대화, 고운 흙과 친절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은유 <해방의 밤>

by 윤서린

화장실 간 김에 세수한다?

아니지, 화장실 가려고 일어난 김에 새벽독서한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새벽 5시에 기상했다.


11시에 집에 와서 글 한편 꾸벅꾸벅 졸면서 마무리해 발행하고 24살 큰 딸의 생일 미역국을 새벽 2시 넘어까지 끓였다. 8명 대가족의 큰 손답게 나는 커다란 들통에 미역국을 끓였다. 아니 고았다.


피곤해서 금방 잠들 줄 알았는데 20분 정도 뒤척이다 잠들었으니 오늘도 수면시간이 2시간 반정도 되나 보다.

근데 오전 출근 후 오후에 잠깐 낮잠을 잘 예정이라 그리 피곤하다는 생각은 아직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늘은 오후 출근이 없는 금요일이기 때문에! 그 마음만으로도 나는 신이 난다.


독서 후 이 글을 쓰고 바로 아이 등교 시키고 출근할 거라서 새벽 5시에 미리 씻고 옷을 챙겨 입은 채 책상에 앉았다.


어제에 이어 나의 독서처방전은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은유 <해방의 밤>으로 동일하다.

<죽음의 수용소>를 한 시간 넘게 읽느라 <해방의 밤>은 겨우 3-4장 읽을 시간 밖에 없었다.


(재미있어져 버린) “읽어야 해서 읽는 책”이 나의 “읽고 싶은 책”에 할당한 시간을 도둑질해 간다.

이런... 이런 시간 도둑질은 착한 도둑질이려나? 괜스레 뭐라 하기도 그렇다.


새벽 기상 시간 인증사진을 찍고 씻고 옷 입고 미역국도 더 고느라 정작 본격적인 독서는 6시에 시작되었다.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 안에서 자신을 견디게 해 준 것은 "내면세계의 극대화"를 통한 "내적인 삶의 심화"를 통해서라 말한다.


그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 잃지 않는 유머와 자연에 대한 감사, 소소한 행복의 발견, 사랑하는 아내와 마음속으로 나누는 대화 등을 통해 행복감과 충족감을 느낀다. 그는 아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주 1)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자기 존재의 공허함과 고독감 그리고 영적인 빈곤으로부터 피난처를 찾을 수 있었다"(주 2)라는 말로 자신을 비롯한 수감자들이 "내면세계의 극대화"를 통해 "내적인 삶의 심화"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극심한 배고픔과 고된 노동의 고통 속에서도 수감자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과거 일들을 회상하고 수감생활이 끝나는 미래의 저녁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 가혹한 현실을 버틸 힘을 얻는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한다.


물론 이들과 비교할 수 없는 평범한 육체의 노동 시간을 버티는 나도 그런 내면세계를 키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5시간의 단순노동 동안 나는 끊임없이 새로 쓸 글에 대해 생각하고 소재를 찾고 문장을 모으며 나만의 글 쓰는 상상놀이를 하며 그 시간을 버틴다. 그래서 어떤 날은 시간이 평소보다 빠르게 흐르고 일하는 순간이 고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앞으로도 내게 이런 상상놀이와 노동의 콜라보는 계속될 예정이다.

내 책상은 지금 난장판이다.

겨우 몸을 욱여넣고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만 확보하고 나머지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은 초토화 상태다.


원래 가족 식탁이었던 것을 거실 한쪽 구석으로 빼서 내 책상을 만들었다. 나만의 놀이터를 내가 세웠다.

(이것은 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벌인 일이다. 물론 아주 잘한 일이고!)


여기서 재빨리 <해방의 밤>을 몇 장 읽고 새벽독서를 마무리하려 한다.

어제에 이어 "울프의 파도"와 "친절은 선택하는 것"을 읽어본다.


작가는 친구와의 대화에서 "잘 들어주는 사람" 즉, "콘크리트처럼 굳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말이 스며드는 고운 흙 같은 사람" (주 3)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작가처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불과 얼마 전에 생각했다. 내 말을 줄이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진심을 기울이는 것. 그것이 상대와의 더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진심으로 그 시간을 함께 나누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나는 내향인인데 소수 모임에 가면 내향인중에서도 말이 많은 편이다.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그런데 상대방도 본인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면 우리는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내가 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할지 머릿속으로 대본을 쓴다.

상대방 이야기에 집중을 못하고 흐름을 잠깐 놓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순간은 우리 일상에 흔한 일이라 우리들은 매번 다시 만났을 때 예전에 했던 이야기들을 또 똑같은 레퍼토리로 늘어놓고 또 한 귀로 흘리며 또 자기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게 아닐까?


이제는 나도 고운 흙처럼 상대의 이야기를 잘 흡수하고 싶다.

그래서 다음에 만났을 때 상대가 이야기한 작은 에피소드를 잊지 않고 싹 틔워 안부로 묻고 싶다.


작가는 친절은 선택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작가 이윤 리의 말을 전한다,.


"친절은 우리가 베풀거나 베풀지 않겠다고 선택할 수 있어요.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친절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자신에 대한 친절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 4)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오늘 하루도 나 스스로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자고.



주 1>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p71

주 2>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p72

주 3> 은유 <해방의 밤> p100

주 4> 은유 <해방의 밤>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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