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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독 6일 차] 테헤란에서의 죽음, 밥에 묶인 삶

빅터 플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은유 <해방의 밤>

by 윤서린

혹시 내 새벽독서글을 기다리신 분들이 계실까? 너무 늦은 거 아닐까 살짝 조바심이 난다.

보통 아침 출근 전 올리는데 첫 주가 되는 토요일이라 루틴이 조금 바뀌었다.


오늘은 4시쯤에 일어나서 새벽독서를 시작하고 싶었는데 5시쯤 눈이 떠졌다. 절반의 실패다. 아니 절반의 성공이다!


오늘은 새벽 6시에 <엄마의 유산 2> 글쓰기 회의가 있는 날이라 마음이 바쁘다.

5시부터 6시까지 다른 작가님 글 읽고 피드백 후, 짧은 독서를 했다.


8시 넘어서 회의가 끝나고 글을 어떤 식으로 추가하고 다듬어 깊게 파고들지 고민이 깊어진 채로 다시 책을 펼친다.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질 때, 이럴 때일수록 뭐라도 읽어야 한다.


걱정은 멈춰! 일단 읽어!


나는 완독률이 낮은 사람.

오늘쯤 다른 책을 펼칠까 했지만 참았다.

멋진 말로는 이런 책 읽기를 병렬독서라고 하지만 나는 문어발독서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날마다 끌리는 책으로 손을 쭉 뻗어 몇 장 읽다 덮고 또 다른 책을 본다.

하지만 나는 읽어야 할 책이 있다.


제발!!! 완독을 하자!

어제에 이어 읽어야 할 책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읽고 싶은 책 은유 <해방의 밤>을 읽는다.


작가는 수용소에서 몇 차례 운명적으로 죽음을 피해 간다. 그러면서 “테헤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음의 신을 본 하인이 두려움에 떨며 주인에게 말을 빌려달라고 한다. 그는 밤새 달려 도망갈 수 있는 “테헤란”으로 갈 것이라고 말하며 죽음의 신을 피해 도망친다.

잠시 후 죽음의 신을 마주친 주인은 하인을 놀라게 한 죽음의 신에게 따진다. 하지만 죽음의 신은 말한다. 그저 테헤란에서 만나기로 되어있는 하인이 아직 이곳에 있어 당황해서 그랬다고.

하인은 자신이 죽을 운명을 피해 그곳으로 갔는데 사실 이 또한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 정해진 운명이었다니.


운명이라는 이름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없는 걸까?

정말 모든 것들은 운명의 굴레 안에서 벌어지는 일일까?

그렇다면 나는 삶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만약 운명이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에 연연하지 말자.

그저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나만의 의미로 채워가며 살아가야겠다.


어느덧 오전 9시가 가까워진다.

은유 <해방의 밤> 첫 이야기를 펼친다.

어제는 목차를 훑어보다 버지니아 울프 이야기에 “울프의 파도”를 읽었었다.

이제는 처음부터 차근히 읽어봐야지.


작가의 글 중에 “밥에 묶인 삶”이라는 구절이 언급된다.

작년에 은유 작가의 강연을 유튜브에서 듣다가 스치듯 들었는데 그때 내 인생도 이런 삶이지 싶어서 공감했다.

나 포함 아마 대부분의 주부들이 이런 삶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야 하겠지.


우리는 언제쯤 그 삶에서 벗어나 본연의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지금도 나는 시부모님 저녁을 차려야 하는 며느리 역할을 하러 시부모님 댁에 와서 이 글을 쓴다.


나도 누가 차려주는 밥 먹고 싶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날 위해, 내가 원하는 음식을 내가 원할 때, 만들어 먹으며 날 위해 살아보고 싶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새벽 5시부터 시작한 하루인데 줌 회의하고, 새벽독서하고, 5시간 그림 그리고 늦은 점심 미역국에 말아 한 그릇 먹고 나니 어느덧 해가 기운다.

전기장판에 달궈진 엉덩이도 뜨근하고 졸음도 몰려와서 꼼짝달싹하기가 싫다.

하지만 은유 작가의 말처럼 시부모님 눈치 보느라 마음이 힘든 것보다 몸이 힘든 편을 택한다.


자, 어서 글 발행하고 저녁밥 차리고 오늘 글쓰기 수업에 관한 <엄마의 유산- 도전의 항해일지> 글도 바로 이어 써보자.


은유 작가처럼 “누군가의 말문을 틔우는 작은 입김”을 만들어보자.


글 한편 들숨

글 한편 날숨


그렇게 글로 숨 쉬어 보자.

그렇게 나를 숨 쉬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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