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은유 <해방의 밤>
이상하다.
새벽 5시에 기상했는데 8시가 다 되어가는데 아직 새벽독서 글을 시작하지 못했다.
분명 일찍 마무리하자고 마음먹고 평소보다 40분 일찍 일어났는데...
초등5학년 막내아들이 개학하면서 써서 내야 할 서류가 많다.
서류를 받은 날 책가방을 태권도 학원에 놓고 오는 바람에 확인을 못하다가 오늘 새벽에야 급하게 작성한다.
기본서류에 동의서는 읽어보지도 않고 체크, 체크...
그런데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성격, 학습지도에 필요한 정보 등을 쓰는 게 어렵다.
아이넷을 키우며 수십 차례 써 내려가서 이제는 눈 감고 쓸 만도 한데.
나는 내 아이를 진짜 알고 있는 걸까?
내가 생각하는 게 그 아이의 성격의 전부일까?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건 뭘까?
이런 고민에 붙잡혀 서류 작성과 준비물을 챙기는데 한 시간이 지나버렸다.
자, 정신 차리고 책 이야기로 돌아가자.
나는 독서초보자다.
유명한 책, 저명한 책,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명작, 고전, 인문학, 철학서, 사회과학, 종교서적과는 거리가 먼 사람.
에세이나 시를 읽고 한 문장에 꽂히면 그 문장으로 1년, 10년을 사는 사람.
어려서 세계명작동화나 셜록홈스 시리즈만 탐독했던 나, 커서는 우울증으로 인한 무기력과 집중력 저하로 책을 못 읽던 20여 년의 시간. 그동안 내가 읽었던 건 그나마 아이들과 함께한 그림책 읽기가 다였다.
그런 내가 글을 쓰고자,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하게 된 책 읽는 시간. 늦은 저녁까지 일하는 나는 밤 시간 대신 이른 새벽시간이 나만의 온전한 독서시간이 됐다.
오늘은 나를 위한 독서처방으로 읽어야 할 책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읽고 싶은 3월의 책, 은유 <해방의 밤>을 읽어 본다.
6시에 부랴 부랴 줌 회의실에 들어가서 글쓰기 모임 작가님 두 분과 함께 시작한 오늘의 새벽 독서.
기상 시간을 인증하는 루틴을 하고 싶어서 휴대폰 사진을 찍었는데 서류 작성하다 정작 독서는 6시에 시작....
인문학적인 글을 읽다 보면 많이 등장하는 책,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드디어 읽어 본다.
맨날 장바구니에 담아두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마음먹고 구입했는데 과연 나는 이 책에서 무엇을 찾게 될까?
우선은 주인공인 그가 아우슈비츠,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의학박사이자 철학박사인데 죽음의 공포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유대인 나치 수용소에서 벌어진 잔혹한 일들은 우리가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통해 익히 알고 있듯 처참하다.
이 책은 그런 고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초점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고통 속에서 인간이 어떤 식으로 적응하고 변화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저자를 차분히 써내려 간다.
조금은 담담히, 조금은 냉소적으로, 조금은 섬뜩한 농담으로.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 놓이면 "충격단계"에 놓이고 그 충격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무감각 단계" 즉,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로 바뀐다고 말한다. 그 예를 본인의 경험으로 얘기하는데 그는 스스로가 느낀 “무감각”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해서 짐짓 놀랐다.
자신과 불과 몇 시간 전 대화를 나눴던 사람이 시체가 되어 끌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저 그게 일상인 듯 무감각하게 수프를 마저 먹는 빅터 플랭크. 그의 다음 이야기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책의 앞부분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인간이 처한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적응하고 변화되어 가는 이야기를 본인의 경험을 통해 풀어낸다. 그 이야기가 서슬 하고도 슬픈데 작가는 냉소적 농담을 툭 던진다. 뭔가 초월한 듯한 그가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후반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그는 그 고통의 장소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 돌아왔는지, 그를 끝까지 살게 한 그것은 어떤 것이었는지…
시간에 쫓긴다.
이러다가 읽고 싶은 책을 못 읽을 판이다.
작가의 서문을 어제에 이어 읽고 끌리는 제목에 페이지를 편다. “울프의 파도”라는 부분.
<자기만의 방>을 읽고 내가 좋아하게 된 그녀. 버지니아 울프.
여성의 창작활동에 경제적 독립과 자기만의 방(공간,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해준 그녀 덕에 나는 그런 삶을 살아가려고 오늘도 노력한다. 그런 그녀에 관한 이야기라니 짐짓 기대하며 읽어 내려간다.
이 글에서 울프가 소설을 아홉 편가량 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나는 그중에 한 편도 못 읽었네…. 집중력 저하로 소설 못 읽는 독서초보자여…. 반성하라!)
“파도”라는 책을 읽은 작가의 느낌은 그녀의 글이 포말같이 느껴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녀가 쓴 “블루&그린”를 조금 들쳐 봤는데 은유 작가가 말한 그 느낌을 나도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다.
스토리보다는 주인공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에 더 집중한 시나 산문 같은 느낌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후회 없이 나답게 살아가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 해답을 조금이라고 고민해 보는 오늘 하루를 살아보고자 다짐하며 밑줄을 긋는다.
또한 맛집 줄 서기를 하며 “안 해본 일” 프로젝트를 해봤다는 은유 작가을 글을 읽고 나도 최근 시도했다 말았던 클래식 듣기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몇 차례 시도하다가 어려워서 그만뒀는데 이 김에 다시 시작해볼까 싶다.
또한 안 해본 일의 일환으로 새벽독서를 시작하고 매일 글을 발행하는 나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한 나를 응원해 줬다.
안 해본 일을 시도해봤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를 기특하게 생각해 줘도 되지 않을까?
아이 등교시간이라 시간이 없어서 뒷장을 읽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내일 이어서 더 읽어야겠다.
어느덧 작심삼일이 지나서 다행이다.
주 1> 은유 <해방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