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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독 2일 차] 책상에서 졸아도 괜찮아

에머슨 <자기 신뢰>, 박준 <계절산문>

by 윤서린

새벽 5:30분 기상

출근 준비하는 남편에게 깨워달라고 부탁했더니 내 알람보다 10분 먼저 깨워준다.

에잇… 10분 더 잘 수 있었는데…


사실 어제저녁, 얼마 전 사회초년생이 된 둘째 딸의 고민과 이야기를 듣다가 2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던 터라 10분도 나한테는 너무 귀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깨웠을 때 일어나야 된다.

이렇게 메롱한 상태면 알람을 끄고 잠들 수 있다.


재스민허브차를 한잔 따뜻하게 타서 초를 하나 켠다.

뭔가 초 하나 다 탈 때까지 책을 읽으면 감성 촉촉해질 것 같은 느낌.

그러나 그것은 착각!

흔들리는 촛불이 오히려 나를 최면에 빠뜨리는 것처럼 눈앞에 아른거려 잠이 더 솔솔 온다.


오늘의 독서처방은 읽어야 할 책 랠프 월도 에머슨의 <자기 신뢰>와 읽고 싶은 책 박준 시인의 <계절산문>이다.


얼마 전 읽기 시작했다가 멈춰둔 에머슨의 <자기 신뢰> 먼저 다시 읽어보자.


“너를 자기 밖에서 구하지 마라”라는 첫 장을 읽고 띵! 하고 머리를 한 대 맞았던 기억이 아직도 있다.


나는 지금까지 나를 어디에서 찾고 있었지? 나의 존재 가치를 왜 외부에서 타인에게서 찾고 인정받고 싶었는지… 깊은 고민을 안겨준 문장이었다.



오늘은 이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라” P56


그동안 늘 꿈꿨다. 아주 조용히 남들 모르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난 한 번도 제대로 글을 써보지 않았다. 그저 마음만으로 글을 썼다.


나중에 애들 다 키워놓고,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나중에 온전히 나만의 공간에서 집중할 수 있을 때…. 나중에… 나중에…

그렇게 미루다 40대 후반이 되었다.

만약 지금도 이런저런 핑계로 글쓰기 시작을 미뤘으면 훗날 관 속에 누워서도 중얼거렸겠지… “아.. 그때 그냥 시작할걸…”. (요즘 글쓰기 너무 재밌는데 못해보고 갔으면 어쩔뻔?!!)


작년 독립서점에서 북토크를 듣다가 나도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불씨가 붙었다. 글쓰기 모임에 들어가고 용기를 내 브런치스토리 작가신청을 했다.


그것이 2024년 9월의 일이다. 어려서부터 막연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그것도 꾸준히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불과 두 달 전.


언제쯤 나는 글다운 글을 쓸 수 있을까?

언제쯤 나는 나다운 글을 쓸 수 있을까?


(중략) “그는 인생을 미루지 않고 오늘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한 가지 기회가 아니라 백 가지 기회가 있다. ” p107


이 문장을 읽으니 어제 읽었던 제노아 작가님의 ” 우리는 살아가면서 반드시 해야 할 ’ 계산서‘ 먼저 치르고, 그 대가로 ’ 영수증‘이라는 보상을 받는다. 즉,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수행할수록, 예상치 못한 순간에 행운이 다가올 가능성이 커진다”라는 글이 떠오른다. (참조)


그래, 나도 오늘에 충실하자. 그러면 백가지 기회가 올 것이다.


오랜만에 박준 시인의 <계절 산문>을 다시 펼친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이라는 책을 쓴 너무나 유명한 시인.

제목 자체도 하나의 시다.


어제 봄비가 내렸기 때문에 3월 산문 부분을 펼친다.


시인이 말한 봄의 스무고개를 찾아 밑줄을 그어본다. 19개 밖에 못 찾아서 다시 하나를 찾아 밑줄을 그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고른 단어는 “기대는 순간”이었다.


시인이 말한 “봄”은 여리고 순하고 정한 것… 저물기도 흩날리기도 가지런하게 수 놓이기도 하는 것, 닿을 것 같지만 놓칠게 분명한 것… 따듯하고 느지막하고 아릿하면서도 아득한 것.


나는 “이 모든 것을 함께 보고 싶은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라는 문장을 마음속으로 끼워 넣는다.


박준 시인의 <다시 회기>라는 시가 아릿하다.

상대를 미래에 헤어져 보고 싶어 하는 힘든 마음을 현재의 내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느낌. 그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맨 밑 두문장으로 아릿하게 여운을 남긴다.

으~~~. 맞아. 이런 게 시야…. 내 마음이 잠시 촉촉해진다.


어느덧 8:20분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막내를 깨워 등교시켜야 한다.

개학 첫날부터 글 쓴다고 아이 지각 시킬 판이다. 어서어서 서두르자.


바쁜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 하루도 미루지 않고 새벽 독서, 글쓰기 성공!

졸면서 책상에 앉아있었어도 나는 기특하다.


참! 초는 2시간 20분 동안 꺼지지 않았다.

초 하나 다 태울 때까지 읽으려면 최소 2:30~3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초 켜고 다 탈 때까지 책 읽겠다는 다짐은 살포시 넣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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