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이라… 고민이 앞섰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요즘, 산문집을 읽어내려갈 수 있을까. 내가 산문의 맛, 행간의 의미를 오롯이 느끼며 읽을 수 있을까. 그런데 기우였다. 득도한 산신령 같은 김훈 작가님의 묘한 문체가 첫 챕터부터 장기판으로, 일산의 호수 공원으로, 전쟁터로, 이곳저곳으로 나를 데리고 다녔다. 오랜만에 만난 역사 선생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짧은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그리고 뒷맛은 상당히 묵직하다. 김훈 작가의 글은 어떻게 탄생하는 가, 이런 글을 쓰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해서도 덩달아 고민하게 되었다. 쓰고 싶은 주제가 생기면, 자료를 찾아 고증한다. 그래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기자 출신이신가, 하고 약력을 찾아보니 한겨레 신문 편집국에서 일하신 적이 있었다)
문체는 짧고, 간결하다. 표현은 다채롭다. 단어 선택의 기준은, 쓰고 싶은 내용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인듯하다. 무리해서 찾아낸 생경한 단어를 쓰려고 하지도, 독자를 위해서 일상적인 단어에만 갇혀 있으려고 하지도 않는 듯한, 그의 단어들. 가끔은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 형용사도, 명사도. 그런데 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사전을 찾아보면 막연히 생각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이 작가의 힘인가, 이게 바로 필력이고, 내공인 것인가, 생각해 보게 했던 책. (작가로서의 나를 키워줄 책이 아닐까. 헤헷.)
마음에 남았던 문장들을 몇 개 옮겨본다.
나는 전율했다. 이것이 예술가로구나! 글자로 된 자료, 남이 만들어놓은 서물을 찾아다닌다는 것은 게으른 자, 눈먼 자, 눈을 떠도 안 보이는 자의 허송세월이었다.
《연필로 쓰기》 별아 내 가슴에. 343면
나는, 전율했다. 글자로 된 자료, 남이 만들어 놓은 서물들을 샅샅이 찾아 읽는 김훈 작가의 집요함에 혀를 내두르던 참이었는데. 그 자료들이 글의 주제에, 인물에, 어떻게 생명력을 불어넣는지 글로 보여주는 김훈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던 참이었는데. 다른 분야의 예술을 하는 음악가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자신을 돌아보다니. 대가의 경지는 다르다, 싶었다.
경복궁은 왕조의 관념적 상징이며 현실의 중심이다. 이 핵심부가 적군이 들이닥치기 이전에 성난 백성들의 방화로 잿더미가 되어버린 사태는 국가권력의 정당성과 그 존재 이유에 대해 무섭고도 근원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었만, 압록강까지 도망갔다가 돌아온 권귀들은 이 잿더미로부터 아무런 영감도 받지 못했다.
《연필로 쓰기》 귀향, 201면
선조가 수도를 버리고,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비겁한 왕이라는 사실은, 광해군을 다룬 영화를 보면서, 역사 공부를 하면서 배웠다. 하지만 경복궁이 적군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백성들에 의해서 타 버렸다는 것은 채 몰랐던 사실이었다. 김훈 작가는 정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임금이 수도를 버리고, 백성을 버리고 도망갔다. 성을 내주고 떠나려는 묘당의 논의는 며칠 전부터 항간에 유포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백성들은 질문했을 것이다. 우리를 버리고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왕이 왕이냐고. 그 와글와글한 항의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저 담담한 문장 뒤로. 또 '유포되어 있었다'가 아닌, '유포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하고, 관찰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도 참 좋았다. 상상이라,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이라는 작가의 신중함이 묻어나는 듯해서.
나는 지금 1592년의 경복궁 방화, 2008년의 남대문 방화, 2009년의 용산참사에서 불을 낸 사람들을 편들자는 것이 아니다. 나는 법원의 판결에 시비를 걸자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내 고향의 슬픔과 고통을 말하려 한다. (..) 이 모든 사태는 국가와 개인, 지배와 피지배, 소유와 박탈, 추방과 저항의 적대관계에서 벌어진 쟁투가 극한에서 폭발한 참극이었다. 그리고 이 참극의 원형과 뿌리는 모두 내 고향의 한복판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이 참극의 뿌리들이 발전적으로 해소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그리고 고향으로 가는 당신들에게 묻고 있다.
《연필로 쓰기》 귀향, 213, 214면
가장 소름이 돋았던 문장. 그동안 쓰고 싶으면서도 쓰지 못했던 글감이 무척 많았다. KTX 승무원 판결이라든가,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등의 이야기에 대한 반론.. 그런데 쓰지 못했던 이유는, '어느 한쪽의 편을 들거나, 시비를 거는 것처럼 느껴지는 글이 써져서'였다. 내가 글을 쓰려고 했던 이유들은, 오히려, 정치 뒤의, 판결 뒤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었다. 하지만 늘 정치적으로 흘러가버리거나, 판결에 대한 기술적 분석에서 끝나서, 참으로 쓰기 어려웠다. 이 문장을 잡고, 써보고 싶은 많은 글들이 다시 생각날 것 같고, 또 이 문장 덕분에 쓸 수 있는 글들이 늘어날 것 같다.
여자가 글을 배우면 친정에 편지질해서 시댁을 흉보고 고자질한다는 이유로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사연도 있었다. 식당 메뉴나 간판, 면사무소의 고시문, 동네 버스 정류장 이름도 읽지 못했다. 기록된 역사가 없는 시대를 선사시대라고 한다는데, 이 문맹 노인들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국 현대사 속에서 전쟁, 이산, 이농, 기아, 가난, 억압의 시대고를 개인의 삶으로 치러냈고 한 시대 전체의 무늬가 나이테처럼 몸에 쟁여져 있고 옹이로 박혀 있지만, 그들의 생애는 당대사에 편입되지 못하고 선사의 지층 밑바닥에 매몰되어 있었다.
《연필로 쓰기》 할매는 몸으로 시를 쓴다. 263면
'남녀 차별'이라는 하나의 고난에도 이렇게 억울하고 힘든데, 전쟁, 이산, 이농, 기아, 가난, 억압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더구나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읽고 쓸 수 있는 글이라는 미디어마저 빼앗기다니. 그럼 어떻게 그 애환을 겪고 견디고 살아냈을까. '할머니들이 글을 배운다'라는 뉴스를 봤다면, 난 감흥 없이 그냥 넘겼으리라. 그런데 김훈 작가는 할머니들이 글을 배우고 써낸 작품을 읽고, 글을 써냈다. 이렇게 먹먹한 문장들로. 글이 삶을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삶이 글을 앞서가는 사람들의 글을 읽고 그 깊이를 헤아렸다. 생각보다 명랑하고, 생각보다 더 깊고, 상당히 아름다운 시들을 만났다. 콘크리트를 뚫고 나온 민들레처럼, 그 시들은 그렇게 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