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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Jun 05. 2020

[말그릇] 부탁한다고 말해줘.

아들아, 엄마도 예쁜 말그릇을 빚어가볼게. 

                                                                                                                                                                          얼마 전 큰 아이가 세돌을 맞았다. 언어가 빠른 편이기는 하지만, 아직 존대말을 잘 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큰 아이의 발화는 때로는 정말 귀엽고, 때로는 매우 당황스럽다. 감정과 욕구를 이제 표현하기 시작한 아이는 "엄마, 나 똑땅(속상)했어." 하고 안기며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엄마, 나 너무 기분 좋아" 라며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구르기도 한다. 이럴 때는 '아, 평생  하는 효도를 3살까지 다 한다더니 그 말이 이말이구나' 하며 행복감에 젖어들곤 한다. 그런데 가끔 "가져와" "떼." "우유 줘." 하고 아이가 나에게 명령조로 이야기할 때, 나는 흠칫 하고 놀라고 만다. 아직 어린아이라 부탁하는 말을 잘 배우지 못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 하고 감정이 올라온다. 


요새 한창 귀여운 네살, 두살... 힘들지만 행복하다는 감정을 되게 진하게 느끼고 있다.


아마 옛날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빠에게 처음으로 맞았던 기억. 오빠랑 나, 모두 어렸을 때였다. 할머니가 살아계셨고, 우리에게 침대가 없었고, 둘이서 방 하나를 공유해야 했던 시절. 그때 오빠는 나에게 상냥하지 않았고, 자주 명령조로 말했다. 그날도 여느때처럼 오빠가 나에게 "야, 이불 좀 펴."라고 명령했었다. 나는 고분고분하게 펴주지 않았다. "이불 좀 펴 줄래? 하고 말하면 펴줄게." 하고 대답했다. 실제로 오빠가 예쁘게 말하면 바로 이불을 깔아줄 용의가 있었다. 그런데 오빠는 "펴라면 펴. 그말이 그말인데 왜 귀찮게 구냐"고 했고, 난 "그 말이 그 말이 아니고, 그렇게 말하면 펴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바로 얼굴에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머리가 어질했고, 잠시 띵했다. 얼굴을 맞았던 건 확실히 기억이 나고 손으로 맞았는지 발로 맞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부모님께 싸운 두 놈은 동시에 잘못했다며 같이 혼났던 것도 기억이 나고. (참 부모님은 어렵다. 매번 명판관이 되어야 하니) 그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떤 말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어떤 요청은 폭력이 되고, 갑질이 된다고.


당시 일상다반사였던 오빠와의 싸움.. 지금은 잘 화해하고 지내요.


지금 아들의 명령조의 말을 들으며 생각해본다. 그건 사소한 일이었던가. 그말이 그말이었던가. 내가 예민했던 것이 문제였던가. 지금 다시 곱씹어봐도 그건 '나에게는' 사소한 일이 아니다. 명령조의 말은 나에게는 폭력이었고, 참아넘길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우리 아이는 좀 더 섬세하고 부드러운 말그릇을 가지고 살아가길 원한다. 그럼 나처럼 유난한 사람과도 기분좋게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예쁜 말그릇에 원하는 것을 소담하게 담을 줄 알게 된다면, 사소한 것에서부터, 폭력을 행사하거나, 되갚을 필요 없이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아들에게 말해본다. "엄마, 저 우유 먹고 싶어요. 우유 좀 주시면 안돼요? 라고 하면 줄게. 우유 줘! 하면 엄마는 주고 싶지 않아져." 다행히 아들이 아직은 내 말을 곧 잘 따라준다. 꽤 긴 문장을 해달라고 부탁해도 금방 따라 해준다. "엄마, 우유 먹고 싶어요. 우유 좀.. (버퍼링.. 기억회로를 더듬는 모양) 주시면, 안 돼요?" 하고. 이 훈육방법이 맞는지 안맞는지 나도 모르겠다. (육아알못... ) 그냥 난 이 아이와 마음 다치지 않게 오래 잘 지내고 싶을 뿐이다. 사랑해. 사실, 명령조로 말해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야. 그래도, 더 잘 존중하는 법을 서로 배워가면 더 좋을 거야.           


                                    

아직 어린 너니까, 달달한 것들 먼저 담는 훈련을 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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