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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Oct 26. 2022

나는 카레가 싫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잘 모른다. 

특히 3분 카레가 싫다. 하얀 쌀밥에 비벼먹는 샛노란 카레, 맛있지 않냐고? 맛은 있다. 맛있는 건 안다. 뭉근하게 끓여낸 당근, 양파, 감자의 은은한 단맛이 매력적이지 않냐고? 매력적이다. 반숙 계란 프라이를 얹어 노른자를 터뜨려 먹어도 맛있고, 잘 익은 김치나 낙지젓을 곁들여 먹어도 맛있다. 나도 안다. 맛있는 거. 내 입에도 맛있다. 하지만 나는 카레를 굳이 해 먹거나 찾아먹지는 않는다. 선택할 수 있을 때는 카레가 아닌 다른 메뉴를 선택한다. 왜냐고? 


그건 바로 친애하는 우리 엄마 때문이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 엄마. 하지만 때론 내 사랑은 짝사랑 같았다. 엄마는 늘 오빠에게 요리 선택권을 주었으니까. 그중 가장 대표적인 메뉴가 카레였다. 그것도 야채를 싫어하는 오빠 때문에 당근, 야채는 다져 넣다시피 해서 형체를 상실한, 햄과 감자만 덩어리로 들어있는 '오빠를 위한 카레'. (나는 모든 재료를 뭉텅뭉텅 크게 썰어 넣는 것이 더 좋았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엄마 요리는 대체적으로 맛있었다. 식재료를 아끼지 않고, 간도 적당히 짭조름한 맛이었다. 다들 맛있다고들 하는 보편적인 맛. 하지만 난 엄마 요리가 맛있지만 싫었다. 오빠에게만 뭘 먹을지 물어보는 엄마의 행동에 서운해서. 오빠가 입에 넣을지, 삼킬지 바라보며 전전긍긍하는 엄마의 표정이 짜증 나서. 


한때는 엄마한테 내가 좋아하는 요리가 뭔지 알고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엄마는 말했다. "너는 가리는 거 없이 잘 먹잖아." 사실이긴 했다. 그래도 가끔은 엄마가 내가 좋아하는 요리도 물어보고, 나를 위해서 요리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장 볼 때도 내 취향은 오빠 취향보다 한참 후순위였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바라기를 포기했던 것 같다. (홈플러스 가실 때만 해도, 오빠가 늘 타 먹는 네스퀵은 챙기지만, 내가 마시는 데자와 캔은 늘 깜빡 잊으셨으니까.) 굳이 내 취향을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어차피 아무거나 차려줘도 먹으니까. 생존에 문제없는 애니까. 


아, 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엄마가 나만을 위한 김치볶음을 만들어주신 적도 있었다. 그래서인가? 병원밥이 심심해서인가? 정말 맛있었는데. (헤헤)





지난주에 엄마가 곰국을 끓였다고 좀 가져가라고 부르셨다. 그래서 오랜만에 엄마, 아빠와, 오빠와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올케언니와 조카들은 외갓집에 갔다)


"장모님, 와, 곰국 너무 맛있어요. 보약 먹는 기분이에요." 

"아이고, 사위가 맛있게 먹으니 기분이 너무 좋네. 갈 때 넉넉하게 싸줄게, 가져가." 


훈훈하고, 기분 좋은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오빠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럼 나는?" 

대체 그 말이 왜 나온 걸까. 사위가 맛있게 먹으니 기분이 좋다는 말에 질투라도 난 걸까. 그런데 엄마가 

"야, 너는... (엄마는 억울한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이거, 이 누린내 나는 걸 누구 때문에 끓였는데!"


나는 맛있게 먹던 곰국을 내려다봤다. 그래, 이 곰국. 오빠 때문에 끓였겠지. 맨날 예쁜 말하는 사위도, 딸도 아닌, 엄마의 아들을 위해서.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다. 우리를 위해서 끓인 건 아니라는 거. 근데 엄마가 오빠를 위해 끓였다고 고백하자, 나와 신랑이 마치 반사적 이익을 취하러 온 군식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한 생각일 수 있다. 그동안 쌓여온 내 피해의식의 회로가 작동한 것이겠지. 


맛있는 거 먹고, 맛있는 걸 받아오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정서적 허기가 이런 걸까? 잘 길러주셔서 감사하다, 맛있는 거 나눠주셔서 감사하다, 당연히 이런 마음이 먼저여야 하는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챙겨준 엄마에게 고맙다는 마음보다 서운한 마음이 더 많이 드는 게 좀 웃기긴 하는데, 스스로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느껴지기는 하는데, 내 마음은 그랬다. 


에이 뭐, 근데 그래도 괜찮아. 우리 집으로 돌아오면, 남편과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동안에는 내가 2순위라거나, 군식구라는 느낌은 들지 않으니까. 체력적으로는 좀 힘들긴 하지만, 짝사랑만 하는 느낌은 아니니까. 


근데, 엄마. 왜 엄마 마음에 오빠는 그렇게 늘 큰 비중인 거야? 정말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OO가 벼슬인 거야? 아니면 첫째라서 그런가? 가끔은, 때로는, 내가 1순위이고 싶을 때가 있어.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그래. 


맛있는 거 먹고, 맛있는 거 받아오면서, 어딘지 허전했어. 이게 정서적 허기라는 거겠지? 그동안 잘 길러주시고 이번에도 맛있는 거 나눠주신다고 불러주신 엄마에게 서운하다는 게 웃기긴 하는데. 내 마음은 그렇더라. 


우리 둘째한테 잘해줘야지. 형아랑 너랑 똑같이 사랑해. 근데 우리는 둘째 동맹이니까, 내가 우리 아기 서럽지 않게, 더 잘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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