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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Dec 06. 2017

#아기님 사랑은 자동반사

"엄마는 나 안 사랑하나 봐"라고 말하면 보여줄 글입니다.

*아기님은 저의 첫 아이를 지칭하는 말이에요. 우리 아들만 귀해서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라,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잠깐 기르도록 맡겨준 귀한 존재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부르려고요! 또 아들이 "나중에 왜 내 이름을 함부로 사용했어?"하고 속상해 할 수도 있으니 미리 약간은 추상적인 이름으로 대체해요. 



원래는 차가운 사람입니다


어제 자기 전 아가님 분유를 먹이고 토닥토닥하던 중이었어요.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누는 말랑말랑한 가족의 시간이었죠. 그런데 불쑥 신랑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렇겠지. 여봉이(우리 부부가 서로를 부르는 애칭)는 이득이 되지 않는 일에 신경 쓰는 거 싫어하잖아."

뭔가 어감이 좋지 않더라고요. "넌 깍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야." 하는 말처럼 들렸달까요. 

"음, 여봉이. 그게 무슨 뜻이지(feat. 도끼눈)? 나는 이득이 안 되는 일에도 신경 잘 쓰거든?"

"왜, 나쁜 뜻으로 얘기한 거 아닌데. 시간이랑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거잖아. 그게 합리적이지 않아?" 

음. 맞는 말이지만, 왠지 그래도 묘하게 부정적인 뉘앙스가 느껴졌어요. 그렇게 느껴졌던 이유 중 하나가, 멘토 오사부도 저에게 같은 말을 했거든요. "너처럼 이득 안 되는 일은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이 나한테 고민이 생길 때마다 연락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사부로서 탁월하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하고요. 저와 매우 가까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걸 보면,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차갑고 이기적인 사람이 엄마가 된다면?


문제는 이런 속성은 참 "엄마"와는 안 어울린다는 거죠. 심지어 저는 우리 아기님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어떻게 하면 최소의 노력으로 육아를 할까 진지하게 오랜 고민을 했답니다. 아기를 돌보는 것을 노동이라고 생각하고, 아이가 훌륭하게 자라는 것을 목표라고 두고 어떻게 하면 노동의 시간과 양을 줄일 것인지를 골몰한 것이죠. 이렇게 보니 저는 참 이기적이고 차가운 사람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겠다, 아이를 기르겠다 결단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 없었거든요. 사랑이 가득하신 시아버님께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그게 당연하다'라고 말씀하셨고, 또 그렇게 사는 게 어떤 것인지 본인이 몸소 표본을 보여주셨어요. 그게 저에게는 또 하나의 부담이었죠. 사로 따지자면, 해본 적 없는 분야의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고, 아직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는데, 그 프로젝트의 팀장으로 해당 분야 경험이 풍부하고, 깐깐하고, 워커홀릭인 상무님이 오신 느낌이랄까요. "어허, 이 정도도 해내지 못하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구나."하시면 어쩌나요. 그런데 저는 아직 티라노라는 저 개인의 욕망을 모조리 무시한 채, 아이만을 위해 살아갈 마음의 각오는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도 하고 싶고, 저의 사회적인 자아도 지키고 싶고, 제 욕망도 송두리째 무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복직은 저에겐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던 셈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제가 아이를 실제로 낳고, 육아휴직을 4개월 붙여서 총 7개월을 집에서 보내다 보니,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기님이 너무너무 너무, 너무 너무너무 너무(IOI 노래 아님 주의) 예쁘다는 것이에요. 객관적으로는 그냥 아기입니다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제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다가오더라고요. 악을 쓰고 울어도 귀엽고, 안아달라고 발버둥 쳐도 귀엽고, 감기 걸려서 그 쪼그만 등을 들싹이며 기침하면 너무 짠하고, 아직 기어갈 줄도 몰라서 앞으로 오려고 버둥대는데 결과적으로 후진을 하게 되는 그 모양새도 너무 귀엽고, 무엇보다 품에 안겨서 입을 헤-하고 벌리고 자는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기 짝이 없어요. 얼마 전 감기 걸려서 투정을 잔뜩 부리다가, 아기띠를 한 제 품에서 잠들었는데 너무 예뻐서 심장이 저릿저릿했습니다. "윽, 심쿵사, 아기님, 날 가져요." 아직 6개월밖에 안 길렀는데도 이렇게 예쁘다니, 앞으로 더 예뻐진다는데 어쩌면 좋습니까? 심장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고민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방과 후에 독서지도 같은 걸 받은 적이 있었는데요. 책을 읽고 질문을 해보고 서로 답을 공유하는 그런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그때는 무슨 책을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질문이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라는, 다소 뻔한 내용이었습니다. 친구들이 모두 "제가 죽으면 부모님이 정말 슬퍼할 거예요. 제 친구들도 슬퍼하겠죠."하는데, 저는 괜히 불필요하게 진지해져서는 "제가 죽으면 부모님이 좋아하실 거예요. 쌀도 덜 들고, 제 것도 오빠한테 다 주면 될 테니까요. 친구들도 처음엔 놀라겠지만, 제가 없다고 별로 자기 삶이 변하지 않는다는 걸 금세 알아차리게 될 거예요" 하고 말했습니다. 아주 자존감이 엉망이었죠? 근데 이 쓸데없는 솔직함 때문에 혼났습니다. 독서 선생님이 엄마에게, "딸 상태가 이상합니다."하고 일렀거든요! 


그때 민감한 사춘기에 호르몬 불균형 등의 이유로 안여돼(말 그대로 안경을 착용하고, 여드름이 잔뜩 나있으며, 비만인 체형을 뜻하는 말이라고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네요)여서 그랬는지 다들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고, 세상이 마냥 어렵고 힘든 곳으로 보였던 시기였는데, '엄마도 이런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엉엉'하고 쓸데없는 고민을 참으로 치열하게 했더랬습니다. 저도 모르게, 질문을 받고 속마음을 얘기해 버렸던 것이죠. 엄마는 제 등짝을 한 대 때리며, "야, 자식 안 예뻐하는 부모가 어딨냐"라고 하셨고, 그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땐 "엄마도, 엄마라서 날 의무감에서 사랑하려고 노력하나 보다"하고 막연하게만 생각했었습니다. 지금 제가 그때의 저를 만난다면,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다시 한번 얘기해 주고 싶네요. 왜냐면, 자식은, 아가님은, 너무너무 너무, 너무, 너무너무너무너무 예쁘거든요. 어떻게 생겼든, 어떤 행동을 하든지 상관없이 그냥 마냥요. 맛있는 음식 보면 침이 나오고, 무릎을 때리면 무릎이 자동으로 솟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자동적으로' 사랑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복직하는 게, 정말 기쁜데 한편으로는 무섭습니다. 원래는 "우리 아가님이 엄마를 찾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고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내가 우리 아기님 보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참아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해야 된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그래도 우리 현명하게 잘 해보자. 아가님 파이팅! 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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