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반짝반짝

치매 걸린 강아지와 함께, 12주차

by 휴지

사람이 감동을 받는 순간은 언제일까.


눈물이 찔끔 흐를 만큼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드문드문 알고 지내던 지인이 나를 누구보다 챙겨줄 때?

특별한 어느 날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큰 선물을 받았을 때?


개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상상력의 바깥에 있는 것을 타인이 기꺼이 끌어 줄

우리는 감동한다.


하지만 우리 노견이 나에게 감동을 주는 순간은 정반대이다.

뻔한 행동을 할 때 가슴이 제일 따뜻해진다.

예측 불가능한 행동은 최대한 삼갔으면 하고

참 보잘 것 없는 장난이나 계속 부렸으면 한다.


지금까지 우리 노견은 나에게 어떤 감동을 선사했을까.

어디 한번 다섯 개만 꼽아볼까?


하나, 내 팔을 베개처럼 편하게 벨 때.

둘, 내 품에 안겨서 얌전히 잘 때.

셋, 늘어지게 코를 골 때.

넷, 자기 만져도 놀라지 않을 때.

다섯, 기 싫은 음식/약을 먹는 시늉이라도 해줄 때.


기억을 더듬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른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평생 끼고 살아야지 싶다.

아니지. 평생 모시고 살아야지 싶다.


물론, 투정을 너무 심하게 부리는 날에는

나도 사람인지라 짜증도 나고 화도 나지만

따뜻한 곳에서 포근히 자고 있는 모습를 보면 다 풀린다.


애초에 내가 이길 싸움이기도 하고, !

약을 절대 안 먹더라도 어떻게든 먹게 만들 거니까.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착하고 귀여운 애가 어떻게 나에게 왔을까, 그런 생각.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평생 갈 상처쯤 짊어질만 하다는, 오만한 생각.


행복이라는 단어로도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사랑스럽다.

사랑이라는 단어로도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행복하다.

끝이 있다는 사실도 부정하고 싶을 만큼 그렇다.


이왕 평생 갈 거 상처보다는 사랑과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니까, 받아들이려는 척이라도 해 본다.



어차피 미래는 이미 다 정해져있고

내가 세부사항을 조정할 뿐이라면.


그렇다면, 우리 노견과의 이별을 두려워하느라 이도 저도 못 게 아니라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고

한 번이라도 더 산책하고

한 번이라도 더 공원으로 놀러가는 게 낫지 않을까?


정해진 이별에서 멀어질 방법이 없는 지금.

우리가 걷는 길 위를 조금이라도 멋지게 꾸민다면,

나중에 뒤를 돌아봤을 때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멋지게 꾸민다면

미래의 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이렇게 귀엽게 생긴 애랑 놀 기회를 놓 수는 없지.


볼을 한 번 더 만지고 머리 한 번 더 쓰다듬고

강아지 특유의 구수한 냄새를 한 번이라도 더 맡아야 한다.


그래야 나에게도 하루를 살아갈 힘이 언제든 나지 않겠는가?


- 나에게서 벗어나려는 우리 노견을 옆구리에 끼고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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