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내가 너라도 그랬을 거야

치매 걸린 강아지와 함께, 21주차

by 휴지

내가 너라도 그랬을 거야.

내가 너라도 내 행동을 별로 안 좋아할 거 같아.


제목은 좀 우울하게 들리겠지만 딱히 그런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가다 보니 소박한 논쟁의 결론이 저렇게 났다.


나야 꼬맹이 때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했지만

우리 노견은 누군가에게 길러지고 싶어하진 않았을 것 아닌가.


그것도 완전하게 종이 다른 존재한테.


세상에 태어났는데 나와 완벽하게 다르게 생긴 어떠한 생명체랑 함께 살아야 한대.

갑자기 낯선 장소에 떨어진 것도 당황스러운데 챙겨주기는 챙겨 줘.

걸음마만 겨우 떼서 아장아장 걷는데 밥 주고 맛있는 거도 주고 칭찬도 해 주고 산책도 해.


나쁘지 않은 환경인 것도 같은데 어떨 때는 자기 얼굴을 막 들이밀어.

내 얼굴보다 한 4~5배는 더 큰 면상을 꾹꾹 눌러대는데 콧김이 내 얼굴의 절반을 덮어.

막 그러거면서 높은 톤의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대.


말도 안 통해서 지금 어떤 기분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늠도 안 돼서

적당히 눈치로 때려 맞춰야 해, 그런데 눈치 게임 실패하면 가끔 딱밤 한 대씩 맞기도 해.


당연히 나도 싫지 않을까? 정말 무섭지 않을까?

내 몸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올려서 막 들었다 놨다하는데

감정을 가진 생물로서 공포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을까?


�...


어쩐지 미안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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