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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Oct 03. 2018

서른두번째 요가이야기

핀차마유라아사나



진실은 근사하다.

"도전해보아도 되고, 원하지 않는다면 머리서기를 해도 돼요." 라는 말을 수업에서 들으면 나는 대부분 도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하는 사람이었다. 혹시나 넘어져서 옆 사람에게 폐를 끼칠까봐, 라고 했지만 사실은 옆사람보다 내 마음이 더 걱정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한다. 혼자만 잘 못하고, 넘어지고, 휘청거리는 나를 만나서 마음이 더 휘청거리게 될까봐 그게 걱정이었던 것이다.

늘 더디고, 멋지게 해내지 못하는 내가 자주 실망스러웠었는데 그렇게 나에 대한 실망의 무게에 눌려 마음이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을까봐 두려웠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가는 아사나가 전부는 아니잖아?" 같은 쉬운 말을 하면서 어려운 동작들을 멀리했었다. 그렇게 쉽게 말하고 나면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지 않아도 나만의 합리화 안에서 나는 문제가 없는 사람이 되었었다. 그렇다. 아사나가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마음의 집인 몸을 제쳐두고 집 안에 있는 마음을 잘 살피는 일이 가능할까? 이제는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도전이 찾아왔을 때 합리화를 하며 도망치고는 대문 밖에 숨어서 안을 훔쳐보며 도전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안하고 싶은 척 했었지만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나 웃어버리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부러웠다. 저들의 무엇이 마음을 강하게 하는 것일까 생각했다. 넘어질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궁금해했다. 매트 위에서 갖는 태도들을 대부분 삶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삶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갖곤 했었다.

수업에 오시는 분들은 아주 다양한데 그들 중의 삼분의 일 정도는 처음의 나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동작들을 처음부터 척척 해내시고 나는 굉장히 오래 연습했던 동작들을 금세 하신다. 모두의 시간은 모두 다르게 흐른다. 누군가는 굉장한 속도로 달려나가고, 누군가는 천천히 걸어간다. 느린 속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빠른 속도로 달려나간다고 해서 더 멋진 풍경만을 계속해서 만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알지만 느린 속력의 나도 이제는 속도를 내야했다. 아사나가 아주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수련자분들에게 난 아사나적으로 뭘 더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어느 날 평소와는 다르게 도전하는 나를 만났다. 어서 해보고 더 알려드리고 싶어서. 그러니까 내 아사나 성장의 8할은 실은 내 수업에 와주시는 분들이다. 내가 잘 모르는 것은 설명할 도리가 없다. 모르는 것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그런 요령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그 덕분에 도전하게 되었고, 막상 도전하다 보니 넘어지는 것쯤은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넘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내내 도전하지 못했었다는 것을 도전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실은 해보고 싶었는데 겁을 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마음이, 진짜가 아니었다. 그리고 진짜를 만나게 도와준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매번 나를 고민하게 한 나와 다른 속도의 사람들.

핀차 마유라아사나는 나에게 그런 아사나였다. 도전하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를 한참동안 이야기할 수 있는 아사나. 그런데 사실은 잘 해내고 싶었던 아사나. 기반의 위치가 변하면 거기에서부터 다시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을 이 아사나가 나에게 알려주었다. 손부터 팔꿈치까지가 지면에 닿아있을 때에는 손의 기반도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평소에 손 기반을 잘 기억했더라도 면적이 넓어지면 알고 있다고 여긴 것도 달라질테니 새롭게 만나야 한다. 어깨관절의 제한이 팔꿈치를 자꾸만 벌어지게 하고 손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어서 다시 손을 살피고, 팔뚝에서 상체로 채워지는 힘도 가만히 들여다본다. 몸의 뒷면에서 잘 뒷받침을 하고 밑에서 채우는 힘 못지 않게 위에서 끌어올려 주는 힘을 기억해야만 다리를 올린 채 균형을 잡게 된다. 여전히 어렵지만 이제는 진실을 마주한다.

진실은 근사하다. 진실을 인정하고 나면 안개처럼 눈 앞을 가리던 나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흔적도 없이 말끔하게 사라진다. 안개터널을 빠져나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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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책,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처음 만난 것은 2014년 1월 이었습니다. 만난 이후로 많은 진실들을 마주할 수 있게 도와준 문장들에게 감사합니다. 책 3장에 '마음이 만드는 드라마'라는 장이 있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밝힙니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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