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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Oct 31. 2018

서른여섯번째 요가이야기

파스치모타나아사나



숨 쉴 공간이 있어야 숨 쉴 수 있다.



가을을 만난다. 가을에는 가을을 만나고 싶다. 가을이 오는 것, 머무르는 것, 가는 모습까지. 놓치지 않고 만나고 싶다.

얼마전 수련 시간에 선생님께서 무언가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누구에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지는 않는지 물으셨는데, 나는 단번에 속으로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 타인에게는, 그게 엄마여도 이유없는 짜증은 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엄마가 서운할 테니까, 내가 아닌 타인의 생을 외롭게 만드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십대 후반 무렵부터 생각했었다. 마음껏 해버린 생각이나 말이 누군가에게 칼날이 되는 일은 너무 무섭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아빠도, 그런 말들을 받아내려고 아이를 낳은 것은 아닐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어쩌다보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뿐인데 어른 행세를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주 외로운 일일 것 같다는 것이 요즘의 생각.

그래서일까, 나는 나에게 곧잘 화를 냈다. 알 수 없이 생긴 화는 대부분 나에게 화살이 되어 꽂혔다. 나는 나를 못살게 굴고, 나를 울게 만들 말들을 내부에 쏟아내는 바보같은 사람이었다. 타인에게는 너그럽고 자신에게는 단호한 잣대를 들이미는 사람.

어느 가을, 숨을 조금 크게 쉬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집 앞 자하문 앞에 주저 앉아 운 적이 있다. 계절이 지나가는 줄 몰랐는데, 바닥은 온통 단풍으로 붉게 노랗게 물들어 있었고 고개를 드니 나무들은 이미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게 서운해서 눈물이 났다. 숨을 한번 크게 쉬지도 못하고 가을이 지나간 뒤였고, 또 다시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고개를 들었을 때엔 가을의 뒤꽁무니도 보지 못할 것이 너무 당연해서, 그런데도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도는 것만 같아서. 나를 찾아온, 좋다고 여기기 어려운 일들과 세상 무엇보다 충만하게 가진 부족함들이 나를 몰아붙이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열심히 살아내어도 나는 계속해서 내 마음에 들지 않을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계속 노력했는데도 여전하다면 계속 하던 일 말고 다른 일을 해보아야 한다. 무언가를 멈추거나, 무언가를 더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더 많은 다른 방향의 사람들을 만나보아야 한다. 그러다보면 내가 놓치고 있던 세계의 편린들이 붙잡고 있던 시간의 틈바구니 사이사이로 끼어들며 숨 구멍을 만들어준다.

타인은 모른다.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내가 괜찮은지, 내 안에 숨 쉴 공간이 있는지.
나만 안다.

파스치모타나아사나를 하며 열려있는 손바닥과 발바닥을 느끼고, 목의 앞면과 뒷면도 살펴본다. 부드러운 목은 어깨의 공간까지 가볍게 열어준다. 거기까지는 바깥에서도 잘 확인할 수 있다. 나를 도와주고 싶어하는 누군가가 도와줄 수 있는 공간의 문제는 바로 여기까지. 골반의 안쪽에도 적당한 공간을 만들면서 동작을 하고 있는지를 가장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나 자신 뿐이다. 공간을 만들고 깊은 숨을 쉬고 있을 때, 코로 들어온 숨은 머리로도 가고, 어깨로도 가고, 상체로, 골반을 지나 하체로, 그리고 발끝까지 전달된다. 서둘러 가려는 마음, 멀리 가려는 욕심에 공간 만들기를 놓치면 숨이 답답해진다. 계속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외부에너지 중 꽤 큰 것이 호흡인데 숨을 몸 구석구석으로 퍼뜨리는 것은 그래서 역시 중요하다. 그리고,

숨 쉴 공간이 있어야 숨을 쉴 수 있다. 무엇보다 해야하는 일은 바로 공간을 만드는 일.

가끔 숨막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매트 위에서 몸을 움직이면서 그리고 삶에서 마음을 움직이면서, 충분한 숨쉴 공간을 만들지 못해 숨막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결국에는 나 아닐까?

그 가을에, 가을이 지나가는 그 풍경을 볼 수 없게 두 눈을 가린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가을 냄새를 맡을 수 없게 코끝을 막았던 것 역시 나 자신이었다.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타인은 완전히 알 수 없는 나라는 세계 안에서 내가 만들어야만 하고 나만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공간이 나를 숨쉬게 한다. 만트라처럼 되뇌인다. 숨 쉴 공간이 있어야 숨 쉴 수 있다.

가을을 만난다. 가까이에서 가깝게 만난다. 멀리에서 찾고자 하는 마음과 멀어진다. 놓치지 않고 만나고 있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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