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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Nov 21. 2018

서른아홉번째 요가이야기

에카파다라자카포타사나 1



시선을 두는 세계가 마음에 미치는 영향

그런 사람이 있었다. 잘 넘어지는 사람. 길에서도 마음에서도 자꾸만 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 넘어진 다음에 벌떡 일어나지 않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울어보고 돌아보고 그러다가 넘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한참 후에 웃어보는 사람. 서둘러 털어내지 못하고 그러려는 노력도 그리 하지 않는 사람. 그런 스스로를 미워하다가 나중에서야 그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된 사람. 그렇다, 그게 바로 그 때의 나 라는 사람.

기억하는 당신은 추운 겨울날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던 사람. 나를 돌아보다가 걸어와 옷깃을 여미어 주고 지퍼를 잠궈주고 목도리를 고쳐매어 주던 사람. 점퍼의 모자를 끌어당겨 씌워주며 환하게 웃던 사람. 그러나 넘어지지도 않고 넘어진 다음에도 벌떡 일어나 가던 길을 마저 갈 수 있는 사람. 서두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금세 털어낼 수 있고 가볍게 다음을 만나는 사람.

그런 두 사람이었으니 두 사람의 세계가 끝난 다음, 관계의 끝을 고한 이가 둘 중 누구였든 하나는 오래 그리워하고 하나는 잠시 그리워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이제는 희미해졌지만 꽤 오래 그를 생각했다. 코끝이 빨갛게 되는 계절이 오면 여전한 나를 미워했다. 닫혀버린 문을 너무 오래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서둘러 고개를 돌릴 수 없었던 것은 그 마음이 인생에서 단 한 번 뿐일것 같아서 였는데 역시나 그와 같은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그런 우리들의 세계는 단지 그 곳, 그 시절에만 존재했다. 그러니까 돌아보니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그도 아니고 그 때의 그도 아니고 그 때 그의 눈 속에 존재하던 나였다. 어떤 한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없어서 해사하게 웃고 천진하던 나였다.

닫히고 있는 세계에서 걸어나와 열리고 있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을 모른채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걸어나오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고개를 돌리면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넘어진 채로 오래 주저앉아 있는 동안 얻은 것이 있다면 나는 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과 같은 장소에서도 바라보는 세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천천히 매듭을 짓고 이후의 세계를 만나는 사람만이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을 놓치지 말자는 다짐도 당시에 시작되었다.

요즘의 내게는 막이 내려가고 있는 세계와 이제 막 커튼이 올라가는 세계가 있다. 저물고 있는 세계를 바라보는 나는 그 세계의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 그것을 잃어버리는 중인 사람이 된다. 그렇게 종료되는 것에 대해 한참 마음을 굴리다가 요즘은 다가올 것들을 더 오래 바라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제 막 시작되는 세계를 길게 응시하는 사람은 그 세계로 진입하는 일에 마음을 두는 사람이다. 고개만 돌렸을 뿐인데 마주하고 있는 세계가 달라지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속한 세계는 달라지는 아주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닫힌 문을 바라볼 때엔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고 이제 막 열리는 문을 바라볼 때엔 만나게 될 것에 대한 설렘이 더 커진다. 많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아주 다른 마음을 마주한다.

에카파타라자카포타사나를 하면서 좁아지는 몸의 뒷면에 더 집중하고 있는 날에는 두려움이 커진다. 허리의 커브를 깊게 만들 때 가까워진 근육들에 상처가 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마음의 소리가 커진다. 그러나 만개하는 꽃잎처럼 활짝 펼쳐진 몸의 앞면에 더 집중하는 날에는 설렘이 찾아온다. 부드럽게 넓어지는 것에 마음을 두기 시작하면 숨의 결이 고와지고 나는 이제 시작일 뿐이니 더 다가가 보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가 커진다.

어떤 세계로 발을 옮기더라도 나는 나일뿐이므로 크게 겁먹을 필요는 없다. 만나는 세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있을테지만 그것을 나답게 하면 된다는 생각. 그렇게 순간에 스며드는 것이라고 마음먹고 나니 스르르 닫히는 세계를 보는 마음도 이제 막 열리는 세계를 보는 마음도 그리 무겁지 않다. 내가 그저 나일 뿐이어도 나를 둘러싼 세계가 조금 더 동그랗고 부드럽게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다. 서둘러 고개를 돌렸던 그 때의 그도, 한참을 바라보다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던 그 때의 나도, 모든 것이 노오란 빛 안에 담겨 매듭이 묶였다. 가볍게 눈을 돌려 새로운 매듭의 꼬리를 당긴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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