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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Jan 23. 2019

마흔여덟번째 요가이야기


불안은 바깥은 딱딱하게 만든다. 내부가 견고해지면 밖은 부드러워진다.

불안은 언제나 미래에 있다. 미래에서 나를 찾아와서 현재를 딱딱하게 만든다.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에는 조금 덜 불안할까 싶지만 그럴 때에도 불안이 사라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것은 미래에서 온 것이고, 이 정도로 그런 일이 일어나줄지 혹은 이 정도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힘이 센 불안과는 그저 만나면 된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을 똑바로 뜨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바깥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은 불안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 안에 생겨난 단단한 조각 하나 덕분이다. 나에 대해 알게된 그 한 조각 덕분이다.

“엄마가 따라오면 나는 엄마까지 신경써야해. 그러니까 소풍에는 오지 않아줬으면 좋겠어.”

타인이라면 그게 누구든 서운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내가, 국민학교 1학년 소풍에 가면서 엄마에게 했던 말이다. 엄마는 아직도 가끔 그날의 서운함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소풍이나 운동회날 찍은 사진을 보면 잔뜩 긴장한 표정의 내가 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소풍에 가는 날에는 모서리가 뾰족한 말을 하곤 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좋아하고 싶었는데, 사실은 늘 가던 학교 교실에 앉아있는 일이 더 좋았다. 이제는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있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나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 가장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못되게 말을 했다. 불안했던 것이리라. 새로운 장소로 다함께 달려가는 일도, 장기자랑을 하는 일도, 친절해보이려고 웃어보이는 일도, 불안을 들키면 모두들 나를 낯설게 바라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모르는 이가 많아지면 말수가 적어지는 나는 누군가가 나를 오해하게 되는 일과 내가 누군가를 오해하는 일이 모두 두려웠다. 누구도 밉지 않은데 나의 마음을 오해하거나 부족한 나의 말에 익숙하지 않은 타인이 상처를 받는 일이 생겨날까 두려웠다. 그렇다. 불안은 미래에서 나를 찾아와 말과 표정을, 마음을 딱딱하게 만들었었다. 그리고 나에게 소중했던 것은 대부분 우리가 주고받는 대화, 그 속의 언어였다.

바깥의 말에 날이 서는 날에는 걸음을 멈춘다. 외부를 향한 표정이 유독 딱딱하게 굳어질 때에도 잠시 멈춰선다. 혼자 있는 동안 마음에 열이 나고 쉽게 울어버릴수록 타인과 함께할 때에는 눈보라치는 겨울밤처럼 차가운 말들을 하게된다. 말의 온도가 자꾸만 낮아진다.

벽에 부딪히면 우선 벽의 무늬를 가만히 응시하는 사람. 쉽게 돌아서지도 않고, 바로 부수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벽을 타고 올라가 넘으려 하지도 않는 사람. 그 자리에서 한참동안 지켜보다가 마음이 서야 그제서야 몸을 움직이는 사람. 흔들리는 동안에는 잘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 그런 나란 사람.

그런 나였으니 나는 그냥 그 자리에서 벽과 함께 한참 있었다. 불안이 만든 벽에 둘러싸여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벽과 조금 친해졌다. 불안과 함께 보낸 시간만큼 불안을 이해하게 되었다. 불안해하는 스스로를 기다려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약해져버린 내부의 에너지는 몸 바깥을 딱딱하게 만든다. 언뜻 보면 강해보이지만 실은 덩치만 커져버린 경직이 그 자리를 채운다. 아래 복부의 약함과 허벅지 안쪽 내전근의 약함은 수련을 소홀히 하자마자 골반의 바깥쪽과 허벅지의 바깥쪽을 딱딱하게 만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다시 매트 위에서 약한 내부에 시선을 둔다. 원인은 외부에 있지 않다. 한 다리로 지지하는 동작 여러 가지를 연달아 할 때면 발바닥의 안쪽에서부터 허벅지의 안쪽으로, 복부의 아래쪽과 척추 중심선으로 힘을 잘 채워두어야함을 더 절실히 느끼게 된다. 약한 내부는 확실히 바깥 근육을 과사용하게 만들고 때로는 더 경직된채로 아사나를 겨우 흉내만 내도록 한다.

몸의 바깥쪽이 딱딱해질 때, 관절과 관절 사이 어딘가에 공간이 사라져 잘못된 느낌이 들 때, 흔들림 때문에 불안해질 때면 내부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숨을 깊게 쉰다. 발바닥의 안쪽까지, 두 다리의 안쪽, 복부의 안쪽과 상체의 중심선에 힘을 채우고 나면, 그래, 이제 바깥은 부드럽고 가벼워진다.

마음의 깊은 곳에 힘이 채워지면 모서리가 둥근 친절한 말을 타인에게 건넬 수 있게 된다. 다정한 시선으로 풍경을 응시하고 얼굴에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드러난다. 불안을 만났을 때 나를 지키는 힘 역시 내부에 있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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