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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Jan 16. 2019

마흔일곱번째 요가이야기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겨울이 찾아왔다. 겨울이 오면 어깨도 골반도 쉽게 뻐근해져서 자주 해야만 하는 동작들이 더욱 많아진다. 그러나 겨울은 지나간다. 한없이 겨울일 것 같지만 봄은 소리없이 찾아오고야 말텐데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더 앞당길 수도 더 미뤄둘 수도 없다. 겨울이 왔다는 것을 알면 그냥 겨울답게 지내면 된다. 겨울을 미워하거나 겨울에서 잠시 도망쳐도 결국에는 기운을 뺀 나만 손해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갑자기 알게되는 것들이 있다. 나무는 더운 여름날도 추운 겨울날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바람이 불면 잎을 떨구고 계절이 바뀌면 다시 잎이 돋아난다. 어쩌면 두려워해도 별 수 없이 온 몸으로 계절을 만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두려워도 별다른 수가 없다. 자연은 그런 것이다. 사전에서 자연을 찾으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 라는 말을 만나게 된다.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 그런 것이 이 세상에 있다. 그것은 힘을 내어 이루는 것보다 어쩌면 힘이 더 세다. 자연의 큰 움직임과 자연스럽게 변하는 몸 같은 것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마음 같은 것들. 우리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자연스럽다는 말의 ‘자연’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자연’과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 그러니 자연스러운 것은 애쓰지 않고 저절로 된 것 같은 모습, 억지로 꾸미지 않은 당연한 것을 이야기한다.

몸과 마음을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고싶다. 나이가 드는 모습이 몸에 새겨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축복이다. 담아온 많은 것들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몸에 나타난다. 깊게 새겨져 오래 거기에 있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무늬가 되어 버리고 몸과 마음의 모습이 변해가는 동안 나이테처럼 쌓여간다. 붙잡아지지 않는 것을 붙잡으려 애를 쓰면 손끝만 하얗게 질릴 뿐이다.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고, 자연스러운 말을 하고싶다. 웃음이 나오는 날에는 웃음을 섞어 말하고 도무지 웃을 수 없는 날에는 그냥 웃음기를 뺀 얼굴로 응시할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서먹해서 웃고 상대가 불편할까봐 웃고 오해받지 않으려고 웃으면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나보다 나은 내가 되고 싶어서 자꾸만 웃었다. 웃고 싶지 않은 날에 애써 웃음을 짜내어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내부는 눈물로 찰랑인다. 웃음이라는 가면이 두꺼워질수록 얼굴에는 어둠이 깊어진다. 나는 내 얼굴과 친해지고 싶다고, 지난 해 여름에 생각했다. 무표정한 얼굴이 사진에 찍혔는데 그 순간 문득, 그 얼굴 역시 ‘나’ 인데 그 얼굴은 한번도 나에게 사랑받지 못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표정은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내가 아니었던 것인지 자연스럽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어쩌면 가장 꾸밈없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을텐데. 그런데 이상한 것은 웃는 모습 사진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 다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나는 왜 이렇게 자연스럽지 못한 표정을 자주 지었던 것일까 한참 생각하다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여러가지 표정을 가진 나를 내가 인정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웃음기를 거둔 나도, 웃고 있는 나도, 모두 자연스럽게 보이는 방법은 그 순간 모든 것에 꾸밈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보다 더 나은 나를 내가 흉내내는 일 말고 그대로의 나로 하루를 살아본다.

수련하는 모습이 누군가의 카메라에 담기면 내가 모르는 내가 거기에 있다. 온통 집중해서 입을 삐죽, 모아서 내밀고 있거나 너무 심각해보여서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카메라 앞에서 요가하는 모습을 찍는 일에는 영 서툴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프레임에 담기는 일은 소원하다. 두려워하고 어색해하는 나와 화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는데, 그것은 자연처럼 자연스러운 존재로서의 나를 받아들이는 일에서 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이제서야 마음이 이야기한다. 겨울같은 나와 여름같은 나는 내 안에 함께 있으니 겨울은 겨울답게 만나면 된다.

그런 나도 그렇지 못한 나도 모두 계절처럼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할 것.
두려워도 별 수 없으니 두려운 날에는 두려워할 것.
웃어지지 않는 날에는 웃지 않아도 스스로를 다그치지 말 것.
이루는 것만큼 이루어지는 것도 주의깊게 관찰할 것.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머무는 장소에 존재하기 위해 섬세하게 시간을 쌓을 것.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마를 뗀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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