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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Mar 28. 2018

여섯번째 요가이야기

나타라자사나

 

 지금, 이 순간 행복한 나를 만난다..



아주 많이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첫사랑이었다. 누구에게나 있는 흔한 첫사랑이지만 나에게는 나의 첫사랑뿐이니까 그는 압도적인 기억으로 남아 아주 오래 생각하였다. 추운 겨울날 길을 걷다가 나를 돌아보아 주는 사람. 옷깃을 여미어 주고 목도리를 고쳐 매어 주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시간이 쌓인 사랑의 감정은 때로 늘 거기에 있을 것처럼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그 사랑에는 끝이 없을 줄 알았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하여도 그 사랑에는 변함이 없을 줄 알았다. 세상에 그런게 어디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신기하지만 그 때의 나는 영원을 믿는 작고 어린 아이였다. 감정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감정을 담고있는 몸도 계속해서 변화한다. 왜 변한지도 모르고 변한 마음 앞에서 먼저 손을 놓은 것은 나였다. 꽉 잡고 있던 손에서 슬그머니, 내 손에 힘을 빼고 미끄러지듯 손을 놓았다. 내가 놓았지만 나는 언제고 우리는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랬다. 왜 다시 만나지지 않는거냐고 내가 잘못된 결정을 내린것 같다고 이야기하였을 때, 그가 말했다.

"누군가가 잘못해서 하는 이별도 있지만, 세상에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도 헤어지게 되는 사람들이 있어. 다른 사람이 너에게 찾아올거고, 나에게도 그렇겠지? 괜찮아. 넌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그냥 우리의 시간이 지나간거야."

스무살, 스물두살에 만나 고작 스물 셋, 스물 다섯이 되었던 우리들. 그는 어떻게 저렇게 멋진 말을 했던걸까? 지금에와 생각하면 재미있다. 저렇게 멋있게 나를 달래주었던 그가 나의 첫사랑이어서 나는 아직도 그가 고맙고, 그가 행복했으면 하고 때로 생각하며 바란다. 그가 떠나가고 나는 줄곧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지자고 생각했었다. 지금 이 순간에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그 기회를 내가 뺐고는 나중에 행복하라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유보한 행복은 영영 나를 찾아오지 않을수도 있다. 미루고 미룰수록 더 그러하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돌아올 줄 알았다고 울어보아도 돌아오지 않는 것들은 세상에 아주 많아서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먼 길을 돌며 행복을 기다리는 대신, 지금을 충실히 느끼며 가까이에서 먼 곳까지 열심히 반짝이는 순간들을 발견하며 오래 걷는 일이다. 그렇게 아주 성실하게 매순간 살아가는 일이다.

요가수트라에는 사향 노루 이야기가 나온다. 사향 노루에게는 냄새가 나는 지점이 있는데, 사향 냄새를 풍기는 곳이 바로 머리 위이다. 사향 노루는 그 냄새를 찾아서 여기 저기로 뛰어다니는데, 결국 자신의 머리 위에서 나온다는 것은 모른채 헤매는 것이다. 행복이 꼭 사향 노루의 사향 냄새 같다고, 경전에서는 이야기한다.

나타라자사나는 어디를 응시하는지에 따라서 상체의 방향과 어깨의 열림이 달라지고, 그로 인해 동작의 깊이가 달라진다. 바닥을 바라보는 나는 몸을 기울이는 듯 보여도 어깨를 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우리의 팔은 가제트가 아니라서 어깨가 닫힌 채로는 가슴이 열리기도 어렵고 발이 멀어지는데에도 한계가 생긴다. 눈높이의 한지점을 응시하며 호흡할 때 상체 전체가 열리면서 어깨가 밖으로 활짝 펼쳐지고 몸의 앞면 전체에 공간을 만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지자는 말은 어쩌면 바닥을 응시하는 일 같고, '그냥 지금 행복해', 라고 말하는 일은 단순하게 앞을 바라보는 일 같다. 비슷해보이지만 관점에 따라 내 마음도 내 몸도 다른 방향성을 갖게 된다.

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관계든 물건이든 시간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난다. 그 많은 것들에 자신을 투영하다보면 무언가가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는 무너져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던 무언가가 떠날 수 있음을 아는 것, 어쩌면 무엇도 영원할 수 없음을 기억하는 일은 희망에 가깝다. 내가 그저 나라면 진짜 나를 훼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오늘 나는, 단순하게 앞을 보며 내가 지금 가진 것, 바로 '내 호흡'을 들여다보며 나타라자사나를 한다. 그냥 지금, 이 순간 행복한 나를 만난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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