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해가 온전히 뜨기 전에 나선 산책길.
바람은 그리 차갑지 않았습니다.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서 왠지 생기를 느낍니다.
산책인지 운동인지 모를 발걸음이 가볍다가 갑자기 느려집니다.
시선을 해 뜨는 쪽으로 돌려 바라봅니다.
아직 일을 시작할 시간이 아닌지 크레인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서 있습니다.
그 뒤로 차츰 황톳빛으로 밝아오는 하늘이 펼쳐졌고 구름이 무늬를 그립니다.
잠시 걸음을 멈춥니다.
더는 볼 수 없을 풍경입니다.
저 크레인이 없어진다면 점차 색이 물드는 하늘과 구름을 볼 수 있을까요?
크레인이 없어진다는 것은 그보다 더 큰 벽이 들어선다는 뜻입니다.
크레인만 없으면 좋을 텐데, 하고 넋두리를 늘어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눈앞의 작은 것에 눈길이 팔려 그 뒷일을 알지 못하는 꼴이라고나 할까요.
그저 이 순간 시간을 부여잡듯 눈에 담고 곱씹어볼 수밖에요.
근처 골목길 산책을 쏘다니면서 구석구석 시간의 흔적을 살피는 게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집집마다 살던 이들이 떠난 흔적만이 널려 있고,
흉물스러운 빨간 엑스만 크게 그려진 빈 골목을 맞닥뜨리게 됐습니다.
얼마 안 가 동네 전체를 숨기려는 듯 장막이 쭉 둘러졌습니다.
그 위로 삐죽 올라온 크레인은 과거의 소멸을 상징합니다.
무작정 과거에 집착하거나,
혹은 새로운 것에 열광할 수는 없겠죠.
허물어지는 동네를 아쉬워하는 마음만이 소중한 뭔가를 생각하는 게 아닌 듯합니다.
오래된 동네의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기쁨도 존재할 테죠.
삶의 새 출발을 두근거리며 기대할 수 있습니다.
저마다의 사정,
저마다의 희비,
저마다의 인생,
깊숙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지 못할 이야기들.
다만 그 이야기들마저 허공 속에 흩뿌려지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남기면 좋을 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