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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의 차이

by 글담



단 하루의 차이였습니다.

11월은 아무래도 가을의 여운이 짙게 남아 있습니다.

바람이 제법 차고, 날씨가 궂긴다고 해도 늦가을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루를 넘기자 늦가을은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자,

산책길에서 봤던,

애처로이 피어 있던 철쭉과 장미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12월 1일,

겨울이 왔습니다.


추운 몸을 녹이려 낯선 동네의 골목 카페를 찾았습니다.

입구에 서 있던 입간판에는 ‘봄 이벤트’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습니다.

“아니, 이제 겨울이 다왔는데 아직 저걸 안 고쳤단 말이야?”

주인장도 어지간히 게으른 걸까요?

아니면 봄의 이벤트가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 미련이 남아서일까요.

그런데 카페 안에 들어가니 봄이 남아 있었습니다.

밖이 보이지 않는 창가에 나란히 놓인 화분에는 봄의 새싹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봄 이벤트는 여전히 진행 중인가 봅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계절은 야무지게 옷을 갈아 입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붙잡는,

시간을 거스르는,

불가능의 가능을 엿봅니다.

착각이나 고집이라 할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이 봄인데,

아직도 가을의 옷을 벗지 않았는데

굳이 겨울이라고 얼어붙을 이유는 없습니다.

겨울에 만난 봄의 이벤트가 그래서 반갑습니다.


단 하루의 차이로 겨울이 찾아왔지만,

단 하루가 지났을 뿐이니 동면의 시간은 좀 더 미루려 합니다.

아직은 써야 할 게 많고,

생각할 게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역병의 시대는 시간의 감각을 지워버렸습니다.

그러니 굳이 겨울의 그늘에 갇힐 이유는 없을 테죠.

물론 여러 벌 옷을 껴입었다고 해도 말이죠.

어쨌든 춥긴 춥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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