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라의 국도를 따라 가는 길은 길고도 지루했습니다.
탁 트인 광야와 벌판,
낮게 짙게 깔린 구름과 가끔 흩뿌리는 비.
이국의 풍경이 주는 두근거림은 이내 잦아들고,
언제쯤 목적지에 도착할지 하염없이 바깥만 바라봅니다.
“잠깐 세우자.”
차를 세운 우리는 접힌 허리와 구겨진 몸을 젖히며 밖으로 나섰습니다
그러다 문득 한참을 달린 이 시골길에서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 멀리 목초지에 풀어 놓은 소떼나 짚더미만 줄곧 보며 왔습니다.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집과 울타리를 지나 오면서 사람 구경은 못했네요.
그래도 저 밭은 사람의 흔적이 가득했습니다.
아마도 농부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일을 한 뒤 집에 돌아갔겠죠.
늦은 오후,
불 밝힌 집의 창문은 안온한 시간을 밖으로 흘려보냅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할 농부들이 새삼 부러웠습니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거든요.
여행의 묘미라고 할까요,
아니면 속성이라고 할까요.
눈에 들어오는 사소한 풍경마저 뭔가 의미를 담으려 하죠.
그러나 저 벌판을 바라볼 때는 그런 의미 따위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무한한 하늘과
거대한 구름과
끝 없는 길을 바라보며 그저 침묵만 지킬 뿐입니다.
고요한 길.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길.
저 벌판에 뭔가를 풀어놓고 싶었지만,
풀어놓을 뭔가가 없으니 그저 바라볼 뿐입니다.
지금 보니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
프랑스의 어느 시골길인 듯한데,
적적한 마을의 풍경이 을씨년스럽거나 정겹지도 않은 무색의 정경입니다.
여행은 당시의 느낌보다 회상의 반추로 마무리의 정점을 찍는 게 아닐까요.
메모를 하고 사진을 찍어도 당시에는 그 어떤 깊은 사유를 하기는 힘듭니다.
갈 길이 바쁠 때는 더욱 그러할 테죠.
그러니 여행을 다녀와 어느 정도 시간을 가진 뒤에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시간이 모자란 듯합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 그 여행에서 성찰이니 통찰이니 하는 대단한 깨달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다만,
곱씹어보며 뭔가를 의미를 찾으려는 생각의 시간을 갖게 해줍니다.
그럴싸한 상징이나 의미를 얻지 못하더라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생각의 시간이라니.
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호사를 누리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