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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가 앉은 날

by 글담



하얀 서리라도 저리 뒤집어쓰고 있다면 따뜻할까요?

햇살에 반짝이는 서리는 차가움의 순도보다 왠지 온기를 느끼게 합니다.

날씨가 쌀쌀해지니 오가는 사람들도 부쩍 줄었습니다.

사람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니 하얀 서리마저 따뜻해 보입니다.


요즘 새벽에 일어나는 게 힘드네요.

매일 습관처럼 새벽에 하던 일들이 자꾸만 미루어집니다.

커피를 내리고 신문을 훑고 시를 보고 책을 읽던 그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산책이라 하면서 운동으로 나선 발걸음이 제법 무거웠나 봅니다.

괜한 욕심과 강박이 낳은 부작용이 발생한 셈입니다.


가만히 밤을 지새면 서서히 내려앉는 서리의 시간.

동이 트면 햇살에 빛나는 결정들.

가까이 보아야 볼 수 있는 시간의 아름다움입니다.

이불에 파묻혀 있으면 볼 수 없죠.

부지런을 떨어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산책을 하면서 클래식을 들을까,

오디오북을 들을까 이리저리 재다가 풀잎 하나 앙상한 나뭇가지 하나 바라봅니다.

무슨 속삭임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하고 귀를 기울여 봅니다.

아직은 저들과 교감을 이루지는 못하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저 서리를 맞은 풀잎이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는 듯합니다.

잠시 발걸음을 늦추게 하는 숨소리라도 들었으니 다행일까요.

겨울 아침 산책길이 주는 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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