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드나들던 카페가 한 해의 마감을 앞두고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습니다.
텅 빈 카페에 앉아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이 작은 공간이 무척이나 넓은 세상으로 보입니다.
벽면에 걸린 그림을 한 점씩 바라보다 한곳에 멈춥니다.
실체와 허상이 모호한 나무 줄기와 그림자.
마치 줄기가 하얀 벽에 붓칠을 한 듯한.
사람이 그린 그림보다 줄기와 그림자를 한참이나 더 바라봅니다.
실체와 허상을 번갈아보며,
허상의 아름다움에 더 빠져드네요.
이 순간이 아니면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허상에 마음에 빼앗겼습니다.
줄기는 자랄 테고,
그림자는 모양을 바꿀 테니까요.
혹은 빛의 각도에 따라 더는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순간을 살아가며,
순간의 연속을 인생이라 부르며,
이 순간을 즐기라고 합니다.
카르페 디엠을 외치며 이 순간에 충실해져야 하는 것은 즐거움뿐만 아니겠죠.
어쩌면 인생은 실체와 허상이 뒤섞여 모호한 것이지 않을까요.
그러니 순간을 부여잡고 현실과 몽상의 경계를 살피는 게 아닐까요.
세밑 찬바람이 다시 부는,
저녁 어스름이 내려 앉는 이 시간도 경계의 시간입니다.
바람이 노을을 날려 보낸 듯,
세상은 곧장 어둠으로 물듭니다.
경계는 허물어지고,
하나의 세상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