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게 가보렵니다

by 글담



인생이 걸어갑니다.

한 발자국 내딛는 걸음이 더디고 힘겨워 보입니다.

때로 활기차게,

하늘을 날아갈 듯 훨훨 내디뎠을 발걸음이 오랜 여정을 거쳐 이제 더디기만 합니다.


발걸음을 맞춰 봅니다.

내 속도에 맞춰 빨리 걸으라고 재촉하지 않습니다.

지팡이 짚는 것마저 힘겨운 마당에 재촉한다고 해서 빨리 갈 듯하지도 않습니다.

발걸음은 천천히 가는 쪽에 맞춰집니다.

맞잡은 손이 있으니 외롭지는 않을 터.


잿빛 하늘에 가렸던 해가 어느덧 모습을 드러냅니다.

차츰 구름은 걷힙니다.

늦은 오후 어둠이 깔리기 전,

잠시나마 파란 하늘도 볼 수 있습니다.

널따란 절 마당을 지나 산과 하늘과 나무와 연등을 보며 마음을 가라 앉혀 봅니다.

겨울의 끝자락이라도 얼어붙은 연못의 얼음은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래된 인생의 숙제가 아직도 풀리지 않은 것처럼.


바람이 살포시 지나갑니다.

나뭇가지에도 걸리지 않고 살짝 흔들어 놓고는 저리 가버립니다.

마치 바람의 꼬리라도 본 것인양 시선도 따라갑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보겠다는 헛된 호기심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바람은 저 멀리 하늘로 솟구칩니다.

바람을 따라간 시선은 눈부신 햇살을 마주하고 눈을 감습니다.

발걸음을 멈춘 채 잠시나마 더딘 발걸음을 떠올립니다.

더딘 발걸음 덕분에 나를 감싸는 바람과 눈부신 햇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느릿느릿 한걸음씩 옮기니

옆지기의 따뜻함을,

햇살과 바람을,

마당의 포근함을,

봄이 오고 있음을,

삶을 살아냈음을 새삼 깨닫지 않을까요.


겨울 늦은 오후,

더딘 발걸음의 속삭임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게다가 주말이니 좀 한가로우면 어떤가요.

더디게 가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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