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이었나, 아니면 깊은 새벽이었을까.
캄캄한 사위에 주변의 풍경은 적막할 따름입니다.
빛 한 줄기가 잔뜩 오므린 꽃봉오리를 비추며 깨웁니다.
봄이 지나가는데 얼른 얼굴을 드러내라고.
일상의 범위가 그리 넓지 않은 터라 늘 가던 곳도 몇 군데 되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으려 해도 뭔가 새로운 피사체를 찾기가 힘드네요.
어디론가 가야 하나, 하고 생각해도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일상을 벗어난다는 게 그토록 발걸음이 무거울 줄이야.
핑계.
어쩌면 게으른 마음의 눈을 감추려는 변명일 테죠.
글모임을 할 때마다 남다르게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쓰라는 말을 종종 합니다.
정작 나는 늘 똑같이 보고 지루해 하고 생각을 아예 안 하네요.
그러니 찍을 게 없다고, 쓸 게 없다고 푸념이나 늘어놓고 있습니다.
얼굴을 아직 드러내지 못한 동백꽃도 하룻밤이 지나면 활짝 웃겠죠.
바람에 고개를 끄덕이며 봄과 사람이 떠나는 것을 바라보겠죠.
그러다가 자신마저 시간을 따라 떠날 테죠.
그렇게 또 봄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