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먼 길을 떠나려 역에 도착한 날.
저 멀리 어스름은 차츰 걷히고,
도시는 서둘러 하루를 시작하려는 듯 불빛을 하나둘 끕니다.
밝은 태양이 솟아오를 테니 더는 필요없다는 듯.
이정표는 갈 곳을 분명히 가리킵니다.
나도 갈 곳이 있어 이곳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머뭇거립니다.
갈 곳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아직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제 막 기지개를 켠 듯 곳곳에서 들리는 도심의 소음을 감싸려는 새벽의 고요.
아마도 그 고요가 감싸고 남은 적막에 사로잡히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갈 곳이 있는데,
갈 시간이 됐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좀처럼 발길을 돌리지 못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모르는 게 점점 많아지고 의문은 깊어지기만 합니다.
세월이 쌓아줄 지혜를 기대했건만,
시간은 그저 흘러만 갔을 뿐이죠.
그동안 쌓아둔 것만으로는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부족하기만 합니다.
세상은 너무나 빨리 바뀌고,
나는 거울 나라의 엘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말했듯이 두 곱절로 빨리 뛰어야 하는데,
뜀박질의 실력이 그리 좋지 못한가 봅니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뛰어야 하나, 하고 중얼거립니다.
이게 내 본심일지도.
자신의 키보다 더 뻗어 있는 그림자를 광장에 드리운 가로등.
불빛을 밝힐 때와 끌 때의 소명이 달라 한낮에는 어색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가로등 그림자의 끄트머리에 잠시 있다가 그제야 발길을 돌립니다.
나는 어색한 시간에 머물고 있는지,
아니면 내 소명을 다하는 시간에 있는지 곱씹으면서.
매 순간이 삶의 변곡점이 될 수도,
혹은 그저 흘려보내는 것일 수도 있겠죠.
지금은 변곡점을 맞이하려 발걸음을 떼어봅니다.
동 트는 시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