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둠이 깔릴 무렵,
동네 어디론가 이어지는 골목길을 돌아다닙니다.
뭉툭한 손톱달이 덩그러니 떠 있는 텅빈 하늘,
그날은 유달리 마음에 가느다란 실바람이 불었나 봅니다.
한두 걸음 가다가 더는 못 보리라 여겼는지 골목 구석구석을 헤아립니다.
아마도 더는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더듬는 것일지도.
비가 올지 뜨거운 햇살이 쏟아질지 알 수 없는 나날입니다.
구름이 잔뜩 뭉친 하늘은 기어이 비를 쏟아 냅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구름 한 점 보이지 않고,
길 위의 물기는 어느덧 메말라 사라져 비가 내린 흔적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송진가루와 꽃가루가 비의 흔적을 뒤덮은 거리는 알록달록합니다.
위로 올려봐도
옆을 바라봐도
밑을 내려봐도
꽃과 가루, 빛과 음영이 어지러이 섞여 봄날임을 새삼 떠올립니다.
느긋하게 산책을 즐길 여유는 없는데,
자꾸만 발길은 돌아갈 곳이 아니라 엉뚱한 곳으로 향합니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말이죠.
가지 못할 길은 아니겠죠.
그러니 정처없이 떠돈다고 해도 제 갈 길을 가는 셈입니다.
정해진 이정표를 아무리 세운다고 해도
길은 늘 구부러진 채로 나타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