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줄도 모으고 한밤중에 바깥으로 나섰습니다.
봄비는 가로등 불빛을 가리려는 듯 세차게 내리다가 이내 잦아듭니다.
칩거의 시간 동안,
봄밤은 깊어가고,
봄비는 흘러가고,
봄도 흐르고,
시든 동백꽃은 고개를 떨군 채 빗물로 초라함을 씻어냅니다.
찬란하게 선홍빛으로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동백꽃.
그의 시간이 지나버린 바람에 시들어버려 목을 꺾었지만,
봄비로 찬란함을 되살립니다.
그 찬란한 초라함이란.
초라한 마음을 느낀다고 해서 자꾸만 움츠러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초라할 때 비로소 자신을 들여다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제야 뜬구름처럼 들리던 성찰이라는 것을 할 수도 있을 테죠.
초라하다고 해서 마음마저 시들어버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조금은 주눅들지언정 아예 시들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마음의 촛불이 사그라들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러니 그 초라함이 지지리 궁상은 아닙니다.
찬란한 초라함을 느낄 때에야 나를 바라보는 시간은 다가옵니다.
봄비 내리던 봄밤이 지나가니,
찬란한 햇살과 오월 봄꽃이 한껏 미소를 짓습니다.
궁색한 자신의 처지를 드러낼 이는 아무도 없을 거라는 봄날 오후.
전날의 봄비 내리던 침묵과 흙냄새 배인 공기의 시간은 금세 잊힙니다.
초라했던 자신의 처지도 그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