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보다 사실적 의미에 취할 때

by 글담

“어라, 언제 저렇게 꽃이 폈지?”

따뜻한 기운이 감돌고, 바람도 묘하게 차갑다가 따뜻하게 몸을 감쌉니다.

어느새 아파트 마당에 외로이 서 있던 매화나무가 하얀 옷으로 갈아 입습니다.

그렇다고 봄이라고 하기에는 옷깃을 여미어야 합니다.


사위가 어두워지자, 따뜻한 차 한 잔이 그립습니다.

인적이 드문 골목 안에서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네요.

굳이 커피 맛을 따질 이유도 없습니다.

단지 공간의 맛을 느낄 수 있을 듯해서 문을 엽니다.

한적한 카페는 주인장 혼자서 지키고 있네요.

찬 바람을 뒤로 하고 따뜻한 조명 아래로 몸을 맡깁니다.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인 화병의 장미는 조화일까요?

굳이 조화일지 생화일지 알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끔은 사실을 깨닫는 것보다 사실적 의미에 취할 때도 있잖아요.

그저 장미가 그곳에, 이 추운 겨울에, 나를 맞이한다는 게 기분 좋을 따름입니다.

바람을 피해 꽃을 만났으니 동네 카페 나들이는 성공한 것 같네요.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을 둘러싼 사실보다 그 사람의 존재 의미를 골똘히 생각하기도 하죠.

한 개인이 갖추고 있는 사실이 마치 존재 의미를 알려주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죠.

학력이나 직업, 지위 등은 그 사람을 둘러싼 사실이겠지만,

그 사람의 존재 의미를 말해주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사실을 두고 그를 평가하기보다 그의 존재 의미를 곱씹어 봅니다.

그건 아마 삶의 향기겠죠.


진한 고독의 내음을 풍기는 이가 있습니다.

외롭다는 말로는 그의 존재 의미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다만, 고독하기에 삶에 더 의미를 부여하는 그가 부럽습니다.

힘들겠죠.

그 고독을 감당한다는 게.

그런데도 자기의 길을 갑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곁에 조용히 머물러 주는 것이겠죠.


비록 조화는 향기를 내뿜지는 못하지만,

꽃의 존재 의미를 가집니다.

그 의미에 흠뻑 빠지니 이 작은 공간에 조금씩 향기가 스며듭니다.

아, 방향제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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