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의 향기 어린 산책을 즐기다가 하늘에 핀 장미 앞에서 걸음을 멈춥니다.
길고도 짧은 휴식의 시간은 우중 풍경과 함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밤이 깊어가니 공원의 등불도 하나둘 꺼집니다.
댕그러니 공중에 떠 있는 가로등만 별을 가리고 땅을 밝힙니다.
낮 동안 짙은 장미 향기를 맡으며 걷던 공원 산책길.
밤이 되니 공원 곁에 붙은 식당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풍겨 옵니다.
꽃 내음과 구운 고기 냄새가 섞이니,
새삼 이곳이 무릉도원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장미는 매년 그 자리에 피고 집니다.
숱한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다니며 장미꽃의 향연에 빠져들고요.
작년에 핀 장미가 올해의 그 장미는 아닐 테지만,
늘 피던 그곳에 또 피었으니 불멸의 운명을 가진 듯합니다.
정원에 고이 피어 있는 장미도 있지만,
하늘에 둥둥 떠 있듯이 피어 있는 장미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가며 한 번 보고 지나치는 장미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머무른 자리에서 무수한 사람을 관조합니다.
사람들은 스치고 지나가며 계절이 바뀌면 방금 본 장미를 잊을 테죠.
이곳이 아니라 여기저기를 다니며 다른 꽃과 풍경을 바라보겠죠.
이곳의 장미는 그 자리에서 바라보던 사람들을 하나씩 눈에 담습니다.
그럼 장미가 아쉬운 걸까요?
장미만이 한곳에 머물러 오가는 인연을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요.
많은 인연을 맺었다고 하지만,
두고두고 아쉬울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한곳에 머물고 있는 나일 테죠.
그들은 이곳과 저곳을 오가며 맺은 인연의 면면을 다 기억하지도 못합니다.
나는 한곳에 머물러 만났던 인연만을 생각할 게 없을 테니 아쉬운 건 나일 테죠.
나도 여러 곳을 다니며 인연을 맺었다지만,
어째서인지 늘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듯합니다.
도타운 햇살이 비치는 한낮은 여름인데,
꽃의 진한 향을 맡으며 겨우 숨 돌리는 밤은 봄입니다.
하루 동안 봄과 여름을 마주합니다.
늘 한 자리에 머물면서 말이죠.
아쉬움을 장미 향기에 실어 날려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