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와 위로의 경계에서

by 글담

받기보다 먼저 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석고상의 여인은 굳이 말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한곳에서 봄을, 꽃을, 평온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니 주는 만큼 마음껏 받아 가려고 손을 내밉니다.


슴슴한 바람과 무심한 햇살.

바깥은 심심한 풍경을 자아내지만,

수다의 향연과 한껏 늘어진 몸뚱이가 어우러진 공간은 편하기만 합니다.

사실 심심한 풍경이라고 해도,

세상은 쉴 새 없이 소란스럽고 거칠기만 합니다.

그래서인지 심심한 풍경이 심심하게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풍경을 바라보는 안쪽 공간이 아늑합니다.

몰아치는 폭풍우에 휘둘리다가 햇살 가득한 항구에 도착한 듯,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지도.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한동안 누구를 만나도 사는 이야기의 끝은 이랬습니다.

요즘에는 좀 다른 듯합니다.

“사는 게 다 그런 건 아닌가 봐.”

같은 하늘 아래 다르게 살아가는 삶의 간극이 큰 탓일까요.

함께 서서 바라보는 길이 더는 같지 않다는 것을 짐짓 알았기 때문일까요.


소설을 연달아 읽은 뒤에 남는 것은 평온입니다.

소설마다 나에게 거는 말이 제각각이라고 해도,

문학이 주는 위로에 빠져 들었나 봅니다.

누군가는 자꾸만 책에 빠져드는 게 왠지 도피처럼 보인다고 했었지요.

글쎄요.

도피일까요?

위로일까요?

새삼 홀로 걷는 길이라는 것을 떠올립니다.

그렇게 도피와 위로의 경계에 서서 동네 골목을 바라봅니다.

아,

해가 슬슬 자취를 감추려 하네요.

경계에 서 있더라도 배는 고프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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