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 안 하세요?"
언젠가 들른 단골 카페의 주인장이 한마디 합니다.
푹신한 1인용 가죽 소파에 몸을 파묻고는 책을 읽고 있었거든요.
그동안 들고 다니던 노트북도 안 가지고 왔으니 의아한가 봅니다.
그냥 조용하고 아담한 동네 카페에서 잠시 책 읽는 여유를 부리고 싶었는데.
카페 뒤편 테라스에 다소곳이 앉아 책을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빛이 배어든 벽에 눈길이 꽂혔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릅니다.
마침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던 음악이 멈췄거든요.
그런데도 마치 빛의 정적에 사로잡힌 듯 착각을 합니다.
비 오는 날의 찰나.
그 순간에 찾아든 나른한 빛의 세계에 들어섰다고.
빛이 배어들 때 시간은 어느새 사라지고 맙니다.
아,
그렇다고 해서 무아지경의 경지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그렇게 멈춰버렸다고요.
요즘은 하루를 시간 단위로 쪼개어 보냅니다.
잠자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이 딱히 구분되어 있지 않죠.
자다가 깨면 일하고,
일하다 졸리면 자고,
다시 일어났다가 책 읽고,
읽다가 또 일하고.
두세 시간씩 쪽잠을 자고,
두세 시간씩 일을 합니다.
하루를 그리 보내니 몽롱하기는커녕 의식은 날카로워지네요.
쪼개어 읽는 책이 맛있습니다.
쪼개어 일하는 원고가 쓰디쓴 맛으로 씹힙니다.
그래도 하루를 어영부영 보내지는 않은 듯해서 불안은 덜하네요.
동네 산책을 다닌 지가 언제였는지.
뜬금없이 골목길이 그립습니다.
엉망진창인 세상을 읽기 위해서라도 산책을 해야겠습니다.
빛이 배어든 작은 공간이 아니라,
빛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한걸음 내딛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