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아직 바깥은 어둠의 시간입니다.
알람도 울리지 않은 듯해서 뒹굴뒹굴 게으름을 피웁니다.
평소에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깨어나는 불면증에 시달리던 터라,
사위가 어두워 일어나야 할 시간은 아직 멀었나 싶었죠.
아, 뭔가 서늘합니다.
얼른 시계를 보니 아뿔싸!
일어나야 할 시간은 한참 지났고,
되려 늦잠을 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아니라 풍경에 속아버렸습니다.
알람이 언제 울렸고, 또 껐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보다 당장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합니다.
준비하고 나서야 하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20여 분.
중요한 약속인지라 기차를 놓치면 안 되니 초조합니다.
급하게 면도와 샤워를 마친 뒤에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나섭니다.
다행히도 역에 도착하니 오히려 시간이 남았네요.
그제야 여명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제야 하늘이 맑고 구름이 한 폭의 그림으로 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약속은 지켜야 하지만,
마음을 졸여가며 자학하는 꼴이 새삼 우습네요.
급해봤자,
서둘러봤자,
초조해봤자,
광활한 우주의 점보다 미미한 존재가 아등바등 애태우는 꼴에 불과한데.
언제부터인가 느긋해지려 합니다.
서둘러 빨리 가는 동안,
무수히 지나쳤을 풍경과 생각과 사람이 아쉬었기 때문입니다.
서두르다가 놓치고,
서두르다가 실수하고,
서두르다가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 느긋해지려 합니다.
뾰족한 마음을 깎으려는 구도의 과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죠.
또 줄비가 쏟아집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그립네요.
가을이 온 건가, 하고 설레발을 칠 마음은 없지만,
가을이 기다려지는 건 참을 수 없네요.
가을의 여명은 여름과는 또 다를 테니까요.
시원한 위로와 곧 겪어야 할 더위에 대한 짜증이 뒤섞인 여름의 여명보다,
시간의 성숙과 기다리는 여유를 일깨워줄 가을의 여명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