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그저 또 다른 세상을 거닐어 보라고 할 뿐

by 글담

얼마 전 기차에 올라타 피곤한 몸을 의자에 묻은 채 고개를 돌리니,

저 옆자리의 누군가가 두툼한 종이 뭉치를 보고 있습니다.

마치 다 쓴 초고를 출력해서 퇴고하는 듯 진지한 얼굴입니다.

펜으로 여기저기 줄을 긋고 메모합니다.

원고일까요?

아니면 논문이나 보고서일까요.

그가 쓴 글인지는 몰라도 무슨 글인지 뜬금없이 궁금해지네요.

어쩌면 그 글의 정체보다도 글을 뜯어보는 그의 얼굴에 끌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괜한 호기심은 잠시 접어두고 읽던 책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글자라는 것을 넘어 세계를 읽으려고 눈에 힘을 줍니다.

소설은 한 남자의 잔잔한 인생을 담고 있습니다.

이렇다 할 반전도 없는.

그런데도 자꾸만 눈길은 그의 인생을 따라 멈추지 않고 따라갑니다.

삶의 시작과 전개, 그리고 마지막 그 순간까지.

세밀한, 그러면서 감성적인 풍경 묘사는 그의 마음과 세상을 드러냅니다.

기차에서 내리면서 언뜻 보니,

옆자리의 남자가 보던 글은 어째 시나리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는 두어 시간 동안 시나리오 속 세상에서 부유하면서 무엇을 고치고 있었을까요?

나는 소설에 빠져 어떤 세상을 걷고 있었던 걸까요?

문학은 또 다른 세상으로 가보라고 손길을 내밉니다.

교훈이나 깨달음 따위 생각지 말고 그 세상을 거닐어 보라고 말이죠.

기차역을 빠져나와 하늘을 보니 어둑해집니다.

파란 하늘은 아래에서부터 차츰 주황색으로 번지며 시간을 달리합니다.

그가 보았던 세상이나,

내가 보았던 세상이나,

누군가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세상은 저마다 의미가 있을 테죠.

어떤 이에게는 낮의 시간을 줄어드는 파란색에 대한 아쉬움을,

또 다른 이에게는 밤의 시간이 다가오는 주황색에 대한 평온함을 느끼는 순간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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