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려 만년필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이 순간은 글을 쓰겠다는 것보다 생각을 하는 시간입니다.
생각을 쥐고 놓지 않은 채 곱씹고 되짚고 되뇌는 것.
만년필은 매일 써야 합니다.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잉크가 굳어버려 잘 써지지 않아서요.
삐뚤빼뚤 글씨라도 조금씩 쓰다 보면 만년필이 제 존재가치를 다하는 것이겠죠.
얼기설기 생각이라도 조금씩 하다 보면 내 삶이 제 존재가치를 다하듯.
한낮 공원에 나갔더니 짙은 구름은 사라져버렸습니다.
푸른 하늘에 대고 괜스레 생각을 써봅니다.
만년필과 종이가 없으니 하늘에 대고 씁니다.
이런 시간,
이런 풍경,
스마트폰에 메모로 쓰기에는 뭔가 어색해서요.
맑은 하늘에 손가락으로 쓴 글은 흔적도 없이 ,
아니 애초에 흔적을 남기지 않죠.
다만 마음속에 남은 글이 되어 서서히 휘발되어 버립니다.
꽃무릇은 시무룩하게 시들고 말았습니다.
홀로 피어 있던 꽃무릇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말았네요.
그 자리에는 잘린 꽃대 하나 덩그러니 서 있습니다.
가을을 지나 한겨울을 넘어 또다시 피어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뭐, 어떻게든 되겠죠.
어떻게든 살아남거나,
어떻게든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해 질 녘 카페에 들러 남은 원고를 들여다 봅니다.
이 시간에 커피를 마시면 안 되는데,
그럴수록 진한 커피는 저 등불의 밝기만큼이나 머릿속을 밝힙니다.
아직 쉴 때가 아닌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