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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담 Jan 09. 2024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을 바라보는 시간

동트는 새벽이 아니라 해 질 녘 노을을 바라봅니다.

이른 아침 어렴풋이 해 뜨는 것을 느꼈지만,

게으른 마음은 신년의 활기보다 따뜻한 수면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다 늦은 오후에 노을을 바라본 건 어떤 분과의 짧은 인연 때문이었습니다.


매주 동네 아이들을 위한 밥상을 차리는 모임이 있습니다.

그 모임이 조촐하게 송년회를 열었던 날,

처음 보는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니를 쓰고 오신 모습이 추운 겨울 때문은 아닌 듯했습니다.

병색이 완연한데 따스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었습니다.

함께 밥을 먹으면서 서로 소개를 하는데 툭 튀어 나온 말기암 환자라는 말.

먹먹해지는 가슴을 숨기고 밥을 꾸역꾸역 먹습니다.

이 순간조차 소중한 시간일 텐데 허투루 말하고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고 해서 마냥 무겁기만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이곳을 찾아 오셨습니다.

마음이 통하는 곳,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는 시간.

대화는 무겁다기보다 웃음을 곁들인 소박한 수다였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주변에 하면 괜히 색안경을 끼고 본다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다가 이곳에 와서 활짝 웃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깊은 병보다 더했을 외로움의 고통에 저마다 손을 내밉니다.

그분도 그 외로움을 덜어내려 찾아온 듯했습니다.

젊었을 때 동생이 약자를 위해 싸우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요즘 들어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해한다는,

동생의 외로움을 이제야 읽을 수 있었다네요.


나의 외로움과 타인의 외로움이 만날 때,

연대의 고리가 엮입니다.

동네 골목길 안 작은 공간에서도,

칼바람 몰아치는 광장에서도,

연대는 외로움을 덜어내고 함께하자는, 함께 가자는 손짓입니다.


노을은 처연하게 아름다웠습니다.

가끔은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마지막이 외롭겠지만,

완전한 어둠이 내릴 때까지는 덜 외롭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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