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비가 온다고 했으니 일찍 나갔다 와야지 하고 나선 주말이었습니다.
오전에 볼 일을 보고 카페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달려 갔습니다.
카운터 쪽에 앉아 책 읽기 좋은 빛이 흐르는 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첫 번째 방문자의 행운이랄까요.
오픈런의 승자가 누리는 결실이었습니다.
느긋하게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쳐 드니 한갓진 곳에서 주말을 보내는 듯합니다.
책을 읽다가 흘긋 보니 지구본이 있군요.
요즘 보기 힘든 물건인지라 요리조리 살핍니다.
어릴 적 지구본을 돌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게 생각납니다.
지금은 그 상상의 나래가 꺾인 것 같아 지구본 대신 머리를 두드립니다.
마이크로와 디테일.
요즘 세상을 사는 방식이자 시야이지 않을까요.
내가 필요한 것만 콕 집어 찾아내는 검색의 시대.
큰 그림과 넓은 세상을 보기보다 나를 중심으로 바라보는 시대.
뭐, 나쁘다고만 볼 수 없겠지만 만족스러운 건 아닙니다.
상상의 세계는 축소되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좁은 시야가 마음에 걸려서요.
지구본을 살피다가 문득 한 이주민 노동자가 떠올랐습니다.
지구본의 울긋불긋한 색깔로 칠해진 어느 나라에서 왔을 그 사람.
경주마의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사람.
눈밖에 난 사람인 셈이죠.
곁에 있어도 눈밖에 있으니 그와 나는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미등록’이라는 수식어로 지워진 존재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어색한 웃음과 침묵.
옆에서 누군가는 미묘한 공기의 흐름을 바꾸려 이런저런 질문을 던집니다.
“축구 좋아해요? 사커!”
“자꾸 그렇게 말 거는 게 더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호의가 의도치않게 불편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아픈 동료와 함께 왔으니 얼마나 긴장하고 걱정이 많았을까요.
처음부터 큰 병원을 선뜻 가지 못하고 작은 의원을 찾아 왔으니 답답하겠죠.
비록 어설픈 호감을 보였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선뜻 내민 호의를 거두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더 큰 병원으로 불안에 떨지 않고 갈 수 있도록 해줬죠.
둥근 지구본을 돌리다 어느 한 곳을 찍습니다.
손가락 마디 끝에 가려진 그곳에도 수많은 존재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은 존재가 삶을 이어갑니다.
지금도 여기서는 직접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는 곳도 있습니다.
지금도 손끝으로 느낄 수 없는 존재 하나하나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그런 삶을 피하려 이곳에 온 이들도 있습니다.
넉넉하게 안아주지는 못할지언정 혐오와 차별의 시선은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