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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담 Jun 25. 2024

달라서 무서운 게 아니라 몰라서 공포스러운 겁니다

그늘 밑에 있어도,

바람이 불어도 열기는 장소를 가리지 않으니 햇살을 피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정신이 저만치 떨어져서 손을 흔드는 새 단골 카페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안식처였습니다.

금세 떨어져 있던 정신이 제 몸에 안착하면서 슬슬 일할 준비를 마칩니다.


잠시 머물던 정신이 또 아득해집니다.

시원한 카페는 졸기에 딱 좋은 곳입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카페 안은 머리를 뉘일 곳을 찾게 만듭니다.

원고와 읽던 책에서 점점 멀어지고,

의식도 차츰 희미해집니다.

안식처는 곧 수면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손님과 주인장이 없는 틈을 타서 잠깐 안락한 의자에 앉았습니다.

아예 고개를 젖히고 잠시 졸았습니다.

꿀잠이네요.


얼마 전 내린 비로 창문에는 바깥 풍경을 덧칠한 듯 먼지로 얼룩졌습니다.

안에만 있으면 먼지로 얼룩진 바깥이 황량하게 보입니다.

이렇듯 필터는 눈앞의 풍경마저 왜곡합니다.

밖으로 나가 보면 소박한 정원과 한옥, 푸르른 나무들이 있는 아담한 풍경인데.


이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웬만한 필터는 걷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언론이나 책에서 보며 갖게 된 필터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여전히 ‘이주민’이라는 틀에 가둬 놓은 채 바라봤습니다.

한 사람으로 바라보려 했지만 쉽지 않더군요.

개인의 다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깨닫습니디.

어떤 틀에 가둬 놓고 한 무리로 봐서는 안 되겠죠.

무리로 묶어 버리면 한 개인의 존재는 사라지고 마니까요.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그와 나의 다름과 같음이 뚜렷이 보였습니다.

세대와 환경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지만,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고민과 삶의 불안은 같았습니다.

다름에서 오는 아픔의 눈물에 공감하고,

같음에서 오는 푸념의 웃음에 또 공감합니다.


다름이 어쩌면 공존의 바탕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르기 때문에 존중할 줄 알아야 하고,

다르기 때문에 내가 모르던 것을 알게 해줍니다.

달라서 무서운 게 아니라 몰라서 공포스러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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