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창가에 자리 잡은 꽃화분.
차마 햇볕은 실내의 찬 바람으로 느끼지 못하겠죠.
해와 꽃 사이의 차단막을 통과하는 햇살.
미처 차단막을 통과하지 못하고 찬 공기에 가로막힌 햇볕.
햇살이 그리운 걸까요,
햇볕이 아쉬운 걸까요.
꽃화분도 뜨거운 여름에는 햇볕을 잠시만이라도 피하고 싶겠죠.
어떤 이의 글을 읽을 때,
유독 고개를 주억거릴 때가 있습니다.
의미를 알겠다는 것일 수도 있고,
의미를 넘어 내 삶의 시간이 그러하다는 공감일 수도 있고,
시간의 회한을 느끼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와 그의 사이에 놓인 차단막이 걷힌 듯 그의 기운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나라는 화분에 그의 자양분이 이식되는 느낌이랄까요.
햇살과 햇볕에다가 햇빛마저 닿는.
신산한 삶의 여정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무엇이 그리 고생스러웠냐고 물으면 궁색해집니다만,
짧아지는 초의 운명이 떠오르니까요.
이리저리 뚝뚝 떨어진 촛농처럼 지난 시간은 삶의 궤적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대단한 뭔가를 이루고,
기념할 만한 업적을 가진 것도 아닌,
그저 미처 녹지 못한 채 흔적만으로 존재하는.
글과 나 사이를 가르는 강이 흐릅니다.
단지 어휘력이나 문장력의 모자람을 탓하는 게 아닙니다.
글이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세상을 글로 알겠다는 오만함을 깨닫는 게죠.
마치 세상을 다 안다는 듯 단호한 어투에 갈수록 거부감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잠시 책을 덮고 가만히 세상을 바라봅니다.
무엇을 느끼려는 것보다 묘사라도 제대로 하면 다행이고요.
무거운 책을 마침내 덮고,
그나마 가벼우리라 여겼던 책을 열었습니다.
착각이었죠.
첫 장부터 감당하지 못할 햇살과 햇볕, 햇빛이 쏟아집니다.
저울로는 잴 수 없는 무거움을 잔뜩 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