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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자 완성입니다

by 글담

날씨가 쌀쌀한 저녁 무렵에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습니다.

카레 요리를 맛있게 하는 집입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추운데 밖에서 기다릴 뻔했네요.

밥을 먹고 나오니 골목은 어둑합니다.

얼마 전만 해도 이곳도 핫플레이스라고 했는데,

어느덧 쇠락의 조짐이 보이네요.


쇠락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다릅니다.

몰락이냐, 또 다른 완성이냐.

어떤 작가는 “쇠락이 곧 완성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건축물을 보면 그 자체로 소멸이 아닌 완성의 미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오래 되고 낡은 골목과 공간을 보면 느끼는 안도감.

소멸과 몰락이 아니라 현재를 함께하는 오래된 가치.

마치 흑백사진을 보면서 컬러사진의 화려함과 다른 아름다움을 보듯이 말이죠.


맛있게 먹고 나온 골목의 쇠락은 소멸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사람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모든 것이 소멸을 향해 가지만,

몰락과 잊혀짐으로 가는 게 아니었으면 하네요.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을 보면서 쇠락의 미를 느꼈습니다.

그들은 잊히는 존재가 아니라 삶의 아름다움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고 나무는 외롭습니다.

쇠락하는 계절입니다.

봄이 오면 다시 살아날 텐데,

지금은 소멸의 감정만을 안고 길을 걷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니 인생의 아름다움을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물과도 같은 식당 안의 화병과 바구니.

색을 드러내는 것보다 흑백으로 볼 때 깊이를 알 수 있었습니다.

쇠락의 단어를 떠올리면서도 완성을 함께 느끼는.

추운 겨울,

이 세상은 또 한 번 쇠락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했습니다.

소멸이 아니라 또 다른 완성을 꿈꿀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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