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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by 글담

한 번 더.

서울을 오가는 길에 늘 보는 63빌딩을 한 번 더 담았었습니다.

눈을 감고 있다가도 기차가 철교를 건너는 소리에 눈을 뜹니다.

덜커덩.

땅 위의 기찻길 위를 달릴 때와는 다른 소리.

추억을 일깨우는 신호음이 되어 무거웠던 머리가 잠시 가벼워집니다.


“이번 주에는 안 만들었어요. 다음 주에도 안 만들 거예요.”

자주 찾는 카페 사장이 심드렁합니다.

사장이 만드는 수제 치즈 케이크가 맛있어서 종종 먹는데,

요즘 왜 없느냐고 물으니 저럽니다.

한 번 더,

좀 만들어 주면 안 되냐고 물으니,

손님이 없어서 한 판, 아니 두 판을 저 혼자 먹었다고 하네요.

물어본 내가 민망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요.


연말이 되니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지만,

예전처럼 정겹게 덕담을 나누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워낙 어이없는 일을 겪기도 했고,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를 대하며 또 한 번 비극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의 아픔에 손 모아 애도를 표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한 번 더,

트라우마를 겪으며 아픔이 일상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매일 조금씩 노트에 글을 씁니다.

일기라고 하기에는 구체적이지 않고,

낙서라고 하기에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만년필을 꺼내 들고 글을 쓸 때,

종이 위에서 나는 긁적거리는 소리가 좋아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무겁지만,

한 번 더,

노트북과 노트와 책을 꺼냅니다.


오늘도 글 작업을 하고,

오늘도 노트를 꺼내 글을 쓰고,

오늘도 책을 이어서 읽고.

그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맞이하겠죠.

한 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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