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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수다

by 글담

어느 공간에 갔는데,

붉은 촛농으로 인장을 찍은 편지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소리가 없는 대화라도 열렬히 나누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은 필체의 편지를.

그러고 보니 요즘 침묵의 대화를 종종 보게 됩니다.

말이 앞선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기 때문일까요.


얼마 전,

카페에 앉아 노트북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습니다.

옆자리에 누가 앉는지도 모른 채.

그런데 뭔가 어수선합니다.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어 보니,

옆자리에서는 한참 수다 중이네요.

손의 현란한 수다.


대화는 소리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그 목소리가 귀에 닿을 때,

의미는 전달된다고 말입니다.

옆자리의 그들은 이러한 생각을 깨트립니다


그들의 대화는 눈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의 침묵은 그 자체로 언어입니다.

감정과 이야기를 가득 담은 침묵.

손짓과 몸짓으로 그들은 시끌벅적합니다.

손끝과 눈빛으로 감정을 다루며 몸으로 이야기합니다.


손짓 하나, 찰나의 눈빛을 놓치면 안 되기에 그들은 깊게 소통합니다.

나는 듣지 못하는 수다의 향연에 넋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농담에 웃다가도

갑자기 싸늘해지기도 합니다.

그들을 둘러싼 분위기를 아주 조금이나마 느끼나 봅니다.


눈빛으로 이해하는 그들은 말 그대로 마음으로 이어진 대화를 합니다.

소리가 대화의 전부가 아니라고 알려주는 듯.

그들의 침묵은 단절이 아닙니다.

그들의 침묵은 연결이었습니다.

그들만의 수다로 가득 찬 침묵.

침묵의 대화를 배워야겠습니다.

요즘 들어 유달리 침묵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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