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웃을 사랑하지 마라

by 글담

눈 내리는 바다를 보고 싶었지만,

부산 해운대는 너무나 따뜻했습니다.

그래도 바다는 온전히 나를 반겨줍니다.

겨울바다를 찾는 그 누구라도 반겨주겠지요.

바다를 편안히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에 가서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봅니다.


수중 방파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인어 동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다를 가리는 게 아니라,

바다를 품은 듯한 모습입니다.

겨울이지만,

따뜻한 햇살을 온몸으로 안으며 바닷물에 반사되는 햇빛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겨울바닷가는 따뜻한 날씨 덕분인지 제법 나들이하는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평온한 분위기에 취해 일하러 온 마음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이런 공간에서 일 이야기를 해야 한다니 왠지 억울하네요.

그저 넋 놓고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을 곳에서.

어쩔 수 없이 눈길을 거둡니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돌아와 한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서로 다른 직종,

서로 다른 환경,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렇게 모여 또 다른 이들과 함께 평화롭게 사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지 마라!”

한 철학자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돕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뒤집는 화두에 잠시 멈칫합니다.

이웃은 우리입니다.

우리는 함께하는 공동체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가둬 놓는 울타리이기도 합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은 갇히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웃이 아닌 자들과도 함께하고,

이웃이 아닌 자들과도 사랑을 나누라는 뜻이랍니다.

그게 정의라는 것이죠.

정의란 국경 안에 없고, 국경 바깥에서 옵니다.


오늘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아닌 자들을 찾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말라고 해서 이웃을 버리라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이웃을 넓히라는 것이겠죠.

따사로운 햇살이 데우는 바닷가의 인어만큼이나 낯선 존재들을.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우리’의 의미는 커지겠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