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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면 지워지는 것입니다

by 글담

갑자기 추운 날씨에 들어간 LP 바는 따듯합니다.

다른 손님은 없어 우리만의 아지트가 되어 음악을 주문합니다.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흥얼거리다가 고개를 드니,

행성 하나가 떠 있습니다.

빛이 이어져 둥근 행성을 연상시킵니다.


몇 개의 불빛은 삐죽 튀어나왔는데,

묘하게 시선을 끕니다.

마치 별 밖으로 뛰쳐나갈 듯이 보이네요.

새로운 세상을 찾으러 가려는 걸까요?

아니면 추방되어 쫓겨나는 꼴일까요.


이 세상에는 추방되어 지워지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추방과 말소는 실제로 그들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 보지 않기 때문에 지워진다고 하는 게 맞는 듯합니다.

보지 않으니 보이지 않게 되고,

보이지 않게 되면 더는 생각하지 않게 되는.


생각할 수 없기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투명 인간이 됩니다.

주변에 조금만 시선을 돌려도 볼 수 있는데,

시선을 돌리지 않기 때문에 볼 수 없는 존재들이 많습니다.

가깝게는 오래된 친구일 수도 있고,

넓게 보면 장애인이나 미등록 이주민과 같은 사람들이죠.


방문 진료를 가는 의사 선생님은 추방의 존재들을 찾아갑니다.

외진 시골 마을에 사는 분,

중증 장애인이라서 고립된 분,

제도에 등록되지 않아 신분이 모호한 분.

공동체나 삶에서 추방되어 말소되어 가는 분들입니다.


사실 시선을 돌린다는 게 쉽지 않죠.

내 삶이 분주해서,

내가 갈 길만 보느라 정신이 없어서,

내 주변만 챙기기에도 벅차서,

다들 잠깐 시선을 돌린다는 게 어렵습니다.


그럴 때마다 추방되고 말소되는 존재를 일깨워주는 분들이 있어 고맙습니다.

내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들지만,

더불어 사는 그 재미를 깨닫게 해주니까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고요.

소소하게 함께하는 재미를 잃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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