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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마주하며, 단지 바라보며

by 글담

몇 년 전,

프랑스의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서 바다를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넓다는 생각보다 크다는 느낌으로 압도한 대서양 바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눈앞의 바다를 가리지 않는 곳으로 갔습니다.

우리나라 동해입니다.


똑같은 바다라고 생각했는데,

동해는 압도적이지는 않습니다.

좌우로 길게 펼쳐진 수평선보다 눈앞 에메랄드빛 바다가 눈에 들어옵니다.

몽글거리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구름이 점점이 떠 있는 하늘과 어울리는 풍경입니다.


대서양 바닷가는 광활했습니다.

어쩌면 바다보다 넓은 바닷가와 엄청난 뭉게구름에 압도당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그 바닷가는 역사의 획을 긋던 현장이기도 했고요.

그에 반해 바람과 구름과 바위가 있는 동해는 소박합니다.

역사를 떠올리기보다 나를 깊숙이 파고드는 침잠의 시간을 갖습니다.


한적한 곳이니만큼,

여유롭게 돌아다니려다 멈춥니다.

발걸음 소리마저 침잠의 시간을 방해할까 봐서요.

그저 바다만 바라봅니다.

그저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오랜만에 나선 짧은 여행은 나를 위한 게 아니었지만,

결국 내가 위로받는 여행이 되었습니다.

거의 일 년 동안 꺼내지 않은 카메라를 들고 연신 셔터를 누릅니다.

감성을 일깨우는 마음의 단추를 누르듯이.

함께한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했던 날입니다.


바다가 주는 교훈이나 그럴듯한 메시지는 없습니다.

그저 마주하며,

단지 바라보며,

마음을 던져버리는 시간이었을 뿐입니다.

굳이 뭔가를 얻으려 하지 않았다는 게 다행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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