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장미가 곳곳에 보입니다.
오월이 시작됐다는 듯이 장미는 존재를 드러냅니다.
그동안 봉오리조차 본 기억이 없는데,
오월의 장미는 느닷없이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뭔가에 쫓긴 듯 허겁지겁 달려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연휴 동안 극심한 무기력에 빠져 허우적거렸습니다.
그저 기분이 가라앉았다는 것으로는 부족한.
그저 허무에 빠진 듯한 기분으로 보낸 나날입니다.
한 작가는 허무를 이렇게 말합니다.
“의미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사라질 때,
조용하고 평화로운 길목이야말로 허무를 위해 마련된 지름길이다.”
홀로 조용히 침잠에 빠질 시간을 갈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 시간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길목’으로 보이죠.
그 길목이 허무로 빠질 수 있는 갈림길일 수도 있는데.
‘의미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은 참 소중합니다.
살아가면서 그런 대상을 찾기가,
또 계속 곁에 두기가 힘들죠.
왜 그럴까요?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나의 의미를 드러내지 않으려 할 때,
홀로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월의 장미야말로 어쩌면 의미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을 테죠.
굳이 사람이 아니라도 뭔가를 나눌 수만 있다면.
너무 서글픈 것일까요?
아무래도 그 대상이 대화가 오가는 상대이면 좋기 때문이겠죠.
오월의 장미를 닮은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요.
늦봄마저 물러나는 듯하네요.
초여름의 햇살과 바람이 허무를 자극합니다.
오월의 장미를,
오월의 장미를 닮은 사람을 그려 보며 마음을 주섬주섬 담아야겠습니다.
이리저리 흘려 놓은 채 멍하니 있을 수 없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