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부쩍 더워졌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축축한 가운데,
살짝 땀이 날 정도로 몸에 열기가 돕니다.
벌써 봄은 장미만 남긴 채 떠나가고,
여름은 비와 더위를 벗 삼아 이르게 찾아왔습니다.
얼마 전, 벗들과 함께한 산책길이 떠오릅니다.
바람은 시원하지만,
햇살은 따가운 강둑길을 걸어가다가 작은 숲길로 들어섰죠.
숲길 안에 쭉쭉 뻗은 나무 사이를 걷다가 발걸음을 멈춥니다.
좁은 햇살의 통로 가운데 피어 있는 꽃 때문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무례함으로 비치는 순간,
인적이 드물었을 그곳은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수줍어하는 꽃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사진을 찍습니다.
어떤 감흥인지도 모르고.
그저 예뻐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그늘진 숲속에서 자리 잡은 꽃의 의미를 되새겨 보지만,
굳이 그렇게 의미를 부여해야 하나 싶어 관둡니다.
구태여 문장으로 옮길 의미를.
그래봤자 이 순간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담지도 못할 텐데.
문체의 기교를 부리느라 의미조차 부풀릴지도 모를 텐데.
어떤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문체는 쓰디쓴 액체를 담아 세상에 권하는 그릇에 불과하다.”
어쩌면 그 그릇에 과도하게 의지하려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읽는 맛이 나는 문장으로 의미를 전달하면 좋죠.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어야 하겠지만.
그릇이 없으면 음식물을 담을 수 없죠.
그렇다고 그릇에만 집착하고 음식물을 준비하지 않으면,
그릇은 먼지 쌓인 집기에 불과하겠죠.
오늘도 그릇과 음식물을 함께 고민합니다.
이 고민은 영원히 안고 가야 할 것임을 새삼 깨달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