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랬습니다.
비 오는 날 세상은 깊은 사색에 젖는다고요.
비가 그치고 맑게 갠 날,
세상은 깊은 사색을 멈추고 기지개를 켭니다.
바늘꽃은 움츠렸던 고개를 들어 세상을 응시합니다.
사색을 멈춘 사이,
나무가 우거진 산책길을 걷습니다.
나무들 틈으로 열린 창에는 여름 햇살이 그득합니다.
어느새 뜨거운 대지가 뿜어내는 열기가 몸을 감쌉니다.
햇살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 되었고요.
깊은 사색이 남긴 여운이 가시지 않습니다.
어떤 학자가 던진 말 때문에요.
“삶의 가장 커다란 쟁점을 다짜고짜 직설적으로 제기하면 내면의 목소리는 침묵해 버린다.
우리는 ‘진실을 말하라. 하지만 빗대어 말하라’는 에밀리 디킨슨의 조언을 따른다.“
너무나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말입니다.
각자의 논리와 진영의 싸움은 언제든지,
또 어디서이든지 벌어집니다.
그게 민주주의니까요.
민주주의는 본래 다툼이지 않을까요.
다툼의 사회가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다툼에서 화합으로 가는 변증의 사회이고요.
화합이 그저 갈등을 봉합하자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각자가 할 말은 하되,
파국의 결말이 아니라 더 나은 변증의 결론으로 가자는 게 아닐까요.
비단 사회뿐만 아니라 개인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겠죠.
그러니 ‘빗대어 말하는’ 방식이 더욱 필요한 시대입니다.
바늘꽃을 보니 이 시대는 바느질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무작정 잘라서 버리거나 나눠버리는 게 아니라 지혜로운 바느질이 필요한 시대.
곳곳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심지어 전쟁까지 아무렇지 않게 벌어집니다.
바느질이 필요한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