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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말을 들을 때

by 글담

능소화를 보러 골목을 찾았습니다.

눈으로 실컷 바라본 뒤에 사진을 찍습니다.

좀 더 능소화가 늘어뜨려졌더라면 좋을 텐데.

괜한 감상입니다.

능소화는 그저 제 자랄 대로 자랐을 뿐인데.


능소화의 황홍색과 담벼락의 하얀색.

마치 한 점의 그림을 보듯이 가만히 서서 감상합니다.

색감과 구도와 존재를 모두 아우르는 작품.

이 또한 골목길 산책의 행운이지 않을까요.

골목을 싸돌아다녀야 하는 이유가 또 생겼습니다.


잠시 구경하던 사람들이 사라지자,

골목은 일순간 조용해집니다.

“물가에 앉으면 말이 없어진다.

그렇다고 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책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조용한 순간을 맞이할 때는 고요입니다.

작가의 말대로 침묵이 아닙니다.

그가 ‘고요의 말’이라고 했던 순간을 느낍니다.

인적이 사라지고,

소리가 사라졌을지라도 능소화와 담벼락은 존재합니다.


능소화와 담벼락 말고도 다양한 존재가 이곳에 있습니다.

오가거나 현존하는,

잠시 들렀다가 시선을 던진 존재들.

이 모두가 고요의 말을 건네거나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 말들을 떠올리고,

그 의미를 곱씹어 봅니다.

혼자만의 상상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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