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세상은 깊은 사색에 젖는다.”
어떤 작가의 이 말처럼 세상은 촉촉하게 사색으로 물듭니다.
비가 오면 그저 시원하다는 생각,
혹은 후텁지근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이 말은 가던 발걸음과 하던 일을 멈추게 합니다.
잠시 일하다가 빗방울을 머금은 잎을 바라봅니다.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조심스럽게 빗방울을 떨어트리지 않고 있군요.
그동안 갈증에 너무 허덕였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빗방울이 마치 보석처럼 빛나서 잠시나마 품고 싶어서일까요.
골목은 고요합니다.
바람도 조용히 속삭이고요.
우중 산책에 나섰습니다.
차마 비를 온전히 맞을 용기가 없어 우산은 쓴 채로 잠시 나섰습니다.
이른 저녁,
비 때문인지 먹구름 때문인지 세상은 어두컴컴합니다.
함께한 지인들의 모습도 실루엣만 어렴풋이 보이고요.
그저 수다 꽃을 피우느라 재잘거리는 그들의 존재감만 느껴집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살면서도 마음은 통하나 봅니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다르고,
심지어 국적도 다릅니다.
한국말을 잘한다고 해서 “한국 사람 다 됐네”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는 온전히 자기 삶과 정체성을 갖추고 있으니까요.
참 달라서 이야깃거리가 재미있습니다.
그러다가 엉뚱한 인연이 드러나면서 반가워하고요.
비 오는 날에 사색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수다를 함께 떨며 사색할 거리를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우중 산책을 마치고 난 뒤,
이제야 빗소리에 맞춰 깊은 사색에 빠져듭니다.
문득 비 오는 날이 좋다는 생각도 함께하면서요.